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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탱볼도 아니면서 외 1편_곽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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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101회 작성일 17-11-1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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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11.13

사과

곽연주

 

 

수도꼭지 아래 손을 대고 레버를 돌린다

수도를 고쳐야겠어 물 온도가 제멋대로네

,, 온도가 제멋대로인 물방울이 손바닥 위에서

튀어 오르다 이내 잠잠해진다

톡톡하게 마른 수건으로 안젤라의 머리를 눌러 닦는데

안젤라가 물 묻은 손으로 내 팔을 꾹 쥐어온다

동전을 빨면 이런 맛이 났지

안젤라가 기겁을 하면 더더 혀로 굴렸는데

 

안젤라는 벌레한테 파 먹히는 사과다

가만히 내 손에 머리를 기대는 안젤라한테서

달달한 냄새가 난다

울고 싶을 때마다 우는 사람은

너무 어리거나 늙은 사람뿐이다

안젤라의 발갛게 익은 이마와 관자놀이와 뺨을 쓸었다

그러면 안젤라가 한참만에 눈을 뜬다

입술을 달싹이더니 뺨맞은 아이처럼 눈을 껌뻑인다

아무 말도 안하면서 입만 달싹이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이건 가루가 되어서 잘게 부서질 그런 장면 같다

 

 

 

탱탱볼도 아니면서

곽연주

 

 

선생님이 교탁을 탁탁 내려치면서

기브앤테이크니까

가르친 만큼 배워가세요 할 때

우리는 앉아서 선생님 얼굴에 점수를 매겼어요

말을 좀 줄였으면 해서 75점을 줬습니다

 

여기는 교실

우리는 배워도 배우질 못하고

그래서 거의 슬픈 얼굴이 될 뻔했는데

하필 수업이 끝나기 전에요

3반에 누가

오르고 오르고 오르고 오르더니

바닥으로 탁탁 떨어졌다는 거예요

탱탱볼도 아니면서 그럴 필요까지야 있었나

배우지 않았지만 우리는 보지 않고도 볼 수 있었어요

엄밀하게 말하자면 선생님처럼 굴 필요는 없었는데

아니 그러니까 가르칠 필요는 없었는데

이상하게 조금 겁이 나서

우리는 서로의 겨드랑이로 파고들었어요

왜 그러는데 하고 묻는 데요 선생님이요

밖에 무슨 일이 난 것 같아요 장난처럼 우리가 말하니까요

탁탁 교탁을 내려쳤어요 선생님이요

말이 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75점인 선생님은요

또 가르친 만큼 배워가세요 했어요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점수를 매겼습니다 깎거나 올리면서요

수업이 끝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에요

 

 

 

- 94년생, 동아대학교 문예창작 소설창작전공 곽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