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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바라보는 기억의 차이2_호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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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196회 작성일 17-11-1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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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를 바라보는 기억의 차이1>에서 받음.  

 

 

영화 <! 수정>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한병철의 이론을 가져올 수 있다. 기억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을 관객이 알 수 없다는 걸 말하기도 한다. 영화 속 각각 수정과 재훈의 이야기는 마치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그들이 서로 간의 망상과 편견에 상대를 집어넣으려는 시도는 여전하다. 재훈이 수정에게 처녀성만을 강조한다는 점이나, 수정이 재훈의 재력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해준다는점이 그러하다. 자신들이 원하는 상에만 초점이 맞춰져있기에 기억에서도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를 테면, 수정과 재훈이 첫 관계를 가지려하기 직전, 재훈이 수정 대신 다른 여인의 이름을 부르며 흥분하는 장면이 이를 반증한다. 수정의 기억으로 추측되는 2부에서 등장하는 장면인데, 이는 수정이 생각했던 재훈의 헌신적인 모습과는 반대되는 지점이다. 이후 수정이 화가 나 재훈을 놔둔 채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재훈이 윽박지르는 점도 재미난 부분이다. 보통의 연인이라면 분노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재훈은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기는커녕, 자신을 두고 간 수정에게 화를 낸다. 영화 내내, 재훈이 수정에게 사랑을 갈구했던 것과 달리 재훈은 수정의 생각만큼 헌신적이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다(이외에도 재훈은 수정과 교제 중, 어느 여인과 낯 뜨거운 애정행각을 벌인다. 누구의 시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재훈이 수정을 열렬히 사랑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재훈 또한 수정과 다를 바 없이, 그녀에 대한 망상과 편견으로 가득하다. 1부 내내 등장했던, 수정의 처녀성이 그러하다. 영화 내내 보여지는 재훈의 행동은 처녀성만을 위해 태어난 사내 같기도 하다. 재훈은 수정과 빨리 관계를 맺으려하나 번번히 좌절되는데, 이때마다 그의 처녀성에 대한 집착은 더욱 커진다. 다행스럽게도(?) 재훈의 환상은 지켜졌는데?사실 수정이 처녀가 아님을 알고 있는 관객 입장에선 우스웠지만?관계를 맺은 이후 피가 묻은 호텔 침대의 시트를 기념으로 챙겨가자고 하는 모습에서 재훈이 가진 망상과 편견이 여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들 두 사람은 서로를 온전히,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처녀라 속이며 온갖 행위?친오빠와의 관계나 극중 유부남인 영수와의 불륜?을 저지른 수정이나 처녀성만을 집착하면서 다른 여자를 생각하는 재훈. 만약 이 두 사람이 서로의 실체를 알았더라면 사랑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두 사람 모두 서로가 가진 편견과 환상만으로 상대를 바라보기에 서로에게 타자가 될 수 없다. 이들 또한 동일자의 지옥에 갇혀있다.

 

서로가 가진 망상과 편견을 보여주기 위해 홍상수 감독은 기억과 생각의 차이를 영화에서 활용했다. 영화는 동일한 상황의 차이점을 보여주며, 왜 기억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를 얘기함과 동시에 나아가 서로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없는 두 남녀를 보여준다. 1부와 2부의 이야기의 차이점만을 드러내고 내용은 그대로 보여줬기에 지루할 수도 있는 작품이긴 하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장면의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의문을 가지게 함과 동시에 주제를 생각하게끔 하는 매력도 있다?이는 <우리 선희>와 다른 지점이다. <우리 선희><! 수정>과 달리 호흡도 빠르며, 결말에서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홍상수 감독의 세 번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평행구조를 차용한 그의 연출이 재치 있으며, 기억과 망상 그리고 주체와 타자로까지 이어지는 영화의 주제의식도 노련하다는 생각이다.

 

 

 

- 93년생. 동아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마지막 세대다. 아직 사랑이 남아있다는 프랑스 문장(Il reste encore l’amour)을 좋아한다. 불문학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