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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바라보는 기억의 차이1_호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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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1-13 15:39 조회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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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11.13 영화비평

타자를 바라보는 기억의 차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 <! 수정>을 감상하며

호나혜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홍상수만큼 뚜렷한 개성을 가진 이도 드물다. 홍상수는 다작하기로도 유명한 감독이다. 내가 감상한 홍상수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오래된 영화는 2011년도에 나온 <북촌방향><다른 나라에서>였다. 영화 <! 수정>2000년도에 나온 홍상수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인데, 작품을 감상하면서 자못 놀랐다. 11년의 간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형식뿐만이 아니라 주제적인 측면에서도 알 수 있었다. 홍상수 감독이 내세우는 주요 소재들 중 하나는 기억과 이에 따른 생각내지는 편견이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러한 소재를 차용한다. <다른 나라에서>, <우리 선희>, <자유의 언덕>,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 이르기 까지, 비교적 최근작에서도 감독이 기억을 다룬 다는 걸 알 수 있다.

 

<! 수정>은 이러한 감독의 주제 의식을 표면적으로 가장 성실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영화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속에서 이들의 기억이 어떻게 다른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1부는 재훈의 이야기로 2부는 수정의 이야기로 나뉘며, 1부와 2부는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들의 반복이다. 그러나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세계는 아니며 두 남녀의 기억에서 오는 다름을 드러내준다. 차이는 숟가락포크와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대화 속의 주제나 인물, 사건이 변경되는 큰 차이 일 수도 있다. 기억과 생각의 차이를 다룬 또 하나의 영화가 있다. 홍상수 감독의 2013년도 작품인 <우리 선희>가 그러하다. <우리 선희>는 선희와 세 명의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들은 모두 선희에게 관심을 보이며, 속내를 알 수 없는 선희에게 의문을 갖는다. 이들은 나흘 동안 선희를 만나며 자신의 선희를 머릿속에 그려낸다. 영화의 결말에서 그들은 한데모여 우리 선희에 대해 떠든다. ‘우리 선희는 이런 친구지, 아냐 선희는 저런 친구야.’ 남자들이 그려낸 선희의 이야기는 다르지만, 자신들끼리 합의를 통해 하나의 선희를 만들어낸다. <우리 선희>에서 알 수 있듯이, 홍상수 감독은 기억생각-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는 나아가 주체와 타자에 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남자들이 그려낸 선희는 그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선희일 뿐, 진짜 선희가 아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선희보단, 자신만의 객체를 만들어내 그녀를 투영한다. 독일의 철학자인 한병철은 그의 저서 에로스의 종말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사랑의 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단순히 다른 타자의 공급이 넘치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오늘날 모든 삶의 영역에서 타자의 침식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 이와 아울러 자아의 나르시시스트화 경향이 강화되어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 타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사실 극적인 변화이지만, 치명적이게도 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에로스는 강한 의미의 타자, 즉 나의 지배 영역에 포섭되지 않는 타자를 향한 것이다. 따라서 점점 더 동일자의 지옥을 닮아가는 오늘의 사회에서는, 에로스적 경험도 있을 수 없다.(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김태환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5, p18.)

 

남자들은 선희를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저 자신들이 원하는 편견 속에 선희가 들어가길 바란다. 그들이 정말 바라는 것은 선희 그 자체가 아니다. 한병철이 말했듯, 이들 또한 동일자로서 선희를 바라보려고만 한다. 이들에게 선희는 타자로 존재할 수 없다.

 

 

- <타자를 바라보는 기억의 차이2>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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