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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치킨_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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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4-20 15:52 조회3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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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4.21 만화리뷰

자두치킨

김지훈

 

 

스무 살, 부산에 살게 되면서 돼지국밥을 처음 먹어보았죠. ‘돼지국밥이라는 고유명사는 친근한 두 개의 낱말이 합쳐진 단어임에도 제게는 외래어처럼 생소했습니다. 낯선 도시의 낯선 식당에 들어와 낯선 음식인 돼지국밥을 시켰을 때 느꼈던 묘한 감정이 지금도 희미하게 떠오릅니다.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은 갓 교복을 벗은 한 청년의 마음을 토닥여주기 충분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음식은 때때로 허기진 몸은 물론 빈곤한 마음까지 채워주곤 합니다. 만화 자두치킨의 주인공 나세르 알리에겐 자두치킨이 바로 그런 음식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네요.

 

이 작품의 시작은 나세르 알리가 한 여인의 이름을 물으며 시작됩니다. 어린 아이의 손을 잡으며 길을 걸어가는 여인의 이름은 이란느, 그녀는 나세르 알리의 옛 연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한 때 나세르 알리에게 있어 인생의 전부였죠. 하지만 그녀는 나세르 알리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란의 전통 타악기인 타르 명연주자인 그는 자신을 잊은 그녀에 대한 상실감을 위로 받기 위해 곧장 악기점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악기점에 있는 그 어떤 타르도 위안을 주진 못합니다. 집에 돌아온 나세르 알리는 긴 시간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준 부서진 타르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립니다. 타르 연주 외에는 그 어떤 행위도 위안을 주지 못했기에 그가 느끼는 상실감은 더욱 큽니다. 그러다 한 친구를 통해 좋은 타르가 있는 곳을 알게 되죠. 그는 타르를 찾아 먼 여정을 떠납니다.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던 막내아들과 함께 말이죠. 그곳에서 나세르는 명기를 얻게 됩니다. 집에 도착한 후 그는 타르가 잘 말라 좋은 소리를 내주길 기대합니다. 악기의 소리는 놀랍도록 아름다웠고 알리 나세르의 연주는 훌륭했습니다. 그렇지만 타르를 켠 후 마음속에 번지는 감정은 자두와 치킨이라는 두 재료처럼 극명하게 다릅니다. 그는 더 이상 타르를 켜는 기쁨을 느끼지 못할 것을 직감하며 눈물을 훔치며 죽음을 결심합니다. 이 작품은 이처럼 나세르 알리의 황당한 결심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 그의 장례식이 거행되고 그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합니다.

 

작가는 나세르가 죽음을 결심하고 난 후 죽기까지의 시간, 그러니까 총 7일간의 짧은 생을 그려냅니다. 작품은 표지부터 시작해 모든 것들이 흑백으로만 표현됩니다. 빳빳한 종이에 그려진 그림들에 생동감이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나세르 알리뿐만이 아닙니다. 작품 속에 틈틈이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방법이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작가는 인물들의 전기를 묘사할 때 어떻게 살았냐보다는 어떻게 죽게 되냐를 주 포커스로 맞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죽음을 가볍게 그려냅니다. 죽어가는 인물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생의 허무함마저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인물들은 무언가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음을 결심하기 전 나세르 알리의 타르처럼 말이죠. 앞표지와 뒤표지에 그려진 나세르 알리의 모습은 비슷한 듯 다릅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표현되지 않지만 우두커니 서있는 나세르 알리 외에 그려진 것은 단 하나……, 바로 타르입니다. 앞표지, 나세르 알리의 몸 중앙에 그려진 타르와는 달리 뒤표지에 그려진 타르는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가 시선을 두고 있는 방향 또한 타르의 반대 방향이죠. 품고 있던 것을 땅에 버린 것이죠. 표지가 나세르 알리의 심정의 변화를 대변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타르의 비중에 비해 제목인 자두치킨의 그림은 표지에 보이지 않습니다. 만화 상에서도 타르에 비해 많이 등장하지 않죠. 그렇지만 자두치킨은, 그러니까 나세르가 가장 좋아하는 바로 이 음식은 소중한 상징물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죽음에 이르는 방식이 바로 음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떻게 죽을지 고민을 합니다. 고심 끝에 그가 생각한 자살 방식은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굶어 죽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있어 고비가 찾아옵니다. 죽음을 결심한 지 이튿날, 그는 허기를 느낍니다. 굶주림은 많은 음식을 떠오르게 합니다. 당연 최고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어머니가 만들어주었던 자두치킨입니다. 이 음식이 떠오른 계기로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인생에 쾌락이 남아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날 저녁 나세르는 꿈속에서 자두치킨을 먹으며 아름다운 여배우의 풍만한 가슴사이에 파묻히는 행복한 단잠에 빠집니다. 사흗날 공교롭게도 아내가 자두치킨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자두치킨을 삼키지 못합니다. 자두치킨 마저 삶에서 밀어내며 이제 그는 완벽하게 모든 욕망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후 나세르 알리는 조금씩 생을 때로는 적극적으로 또 때로는 소극적으로 정리합니다. 엿샛날 마침내 저승사자 아즈라엘이 그를 찾아옵니다. 막상 죽음이 다가오자 그는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지만 겸허하게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이렛날 그는 편안히 눈을 감습니다. 이날을 작가는 단 한 페이지로 짧게 언급하며 마무리합니다. 심지어 나세르가 아닌 그를 찾아온 여동생의 발화로만 전개되는 구성은 그의 마지막을 더욱 허무하게 그려냅니다.

 

여드렛날 나세르 알리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그의 모든 것이었던 이란느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열렬히 사랑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결혼에 실패한 후 이별하게 된 두 남녀……. 그렇게 둘은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합니다. 남자는 타르를 평생의 사랑이었던 이란느 대신 동반자로 여기며 살아가고 여자는 살기 위해 남자를 잊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죠. 그 아무리 친근한 돼지국밥도 샤프란과 자두를 품은 고급스런 자두치킨도 사랑만큼 우리의 생을 배부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만화는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과 우리 생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질문을 던집니다. 나세르 알리는 그저 자두치킨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담겨져 있던 사랑을 되새기며 닭과 어우러져 있는 샤프란의 향과 자두의 달콤함을 즐겼던 것이겠죠. 음식과 사랑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정확히 답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가 우리 삶에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나는 감히 장담합니다. 뒤늦게 나세르 알리가 떠올린 이란느는 기억에서 묻었던 사랑하는 이가 땅에 묻히는 광경을 슬피 바라봅니다. 그녀 옆에는 저승사자 이즈라엘이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아직 남은 삶 죽어가기보단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밥을 먹으며 말이죠.

고은선생님의 이라는 짧은 시로 살포시 내 마음을 정리해봅니다.

 

두 사람이 마주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더라

 

 

 

​- 라디오 작가,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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