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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극장과 찾아가는 달빛극장_김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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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1-08 17:15 조회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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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11.09

모퉁이극장과 찾아가는 달빛극장

-달은 어디에나 있다.

김온주

 

 

낮에도 달이 뜬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득 메운 아이들 속의 작은 점이었다. “낮에는 해가 뜨고, 달이 진다.”는 신화적 통념 속에 살던 내가 우연히 올려다 본 까마득한 하늘에는 낮이 되면 땅 밑으로 사라진다고 믿었던 달이 떠있었다. 달은 나에게 놀라운 발견이자 경험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의 균열을 경험한 순간인 낮달은 나에게 기억 속에 아스라이 남아있다. 그날이후로 가끔 한낮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낮달을 찾는 습관이 생겼다. 날이 밝으면 지평선 저 너머로 져버린다고 믿는 그 달을.

 

다 커버린 나는 여전히 빽빽한 인파속의 하나의 점이고, 어린 시절 꿈꾸던 장래희망과는 거리가 먼 대단할 것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놀랐던 그날의 경험은 자라고 아는 게 많아질수록 별 대수롭지 않은 사실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다시금 낮에는 해가 뜨고, 달이 진다.”는 신화적 통념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나 역시 한낮의 달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낮에 뜨는 달을 잊어버리면서 어른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른의 삶에서 허덕이고 지칠 무렵 나는 모퉁이극장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어른들이 어른인 척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였다. 영화가 그러하듯 잠시 내가 손에 쥐던 가면을 모두 내려놓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다시 낮에 뜬 달을 발견하게 되었다. 조금 다른 이름의 낮달들, 바로 관객이었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영화를 봤고, 극장을 전전했지만 내가 관객이라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저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의미로만 아니 그 의미조차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모퉁이 극장에서 나는 어린 시절 학교운동장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관객으로서의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신화적 통념 속에서 다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좋아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모퉁이극장에서 나는 관객활동가가 되었다. 관객활동가.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객으로서 주체적 수용자임을 스스로 인식하게 된 후 가지게 된 관객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관객이고 누구나 관객활동가이다. 하지만 단순한 하나의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가 영화를 보고 모두가 자신을 관객이라 부르지만 관객에 대해 생각하지는 못한다. 물론 나부터가 그랬다. 암전된 극장 안, 밝은 스크린 앞의 빛나는 눈들. 그들 모두가 낮달인 것이다. 모퉁이는 그렇게 낮달이 뜨는 공간이고 나는 모든 사람들이 모퉁이의 관객이 되어보았으면 좋겠다.

 

이번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측에서 주최하는 찾아가는 달빛극장을 모퉁이극장 앞 중앙동 40계단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모퉁이극장이 주최 측과 함께 행사를 맡게 되었고 관객활동가들이 이번 행사를 함께 만들어나갔다. 말 그대로 관객이 관객을 찾아가는 행사였다. 달빛극장을 홍보하는 영상을 만들고, 포스터를 붙이고, 부스를 운영하고, 오프닝 사회를 관객활동가들이 서로 맡아 진행하였다. 영화제를 운영하는 협회의 직원들이나 할일들을 관객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참여하였다. 관객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단지 수용하는 것을 넘어 관객 문화를 만들고 행사를 진행하는 일은 나에게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했던 경험은 관객으로서 관객을 만났던 일이다. 단순한 관객으로만 있을 때 나는 다른 관객들을 객관적으로 만나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관객이라는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독자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하나의 점 같은 부분적 존재로 전락한다. 그런데 달빛극장에 참여하면서 관객활동가로서 많은 관객들을 일대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40계단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야말로 달빛극장을 있게 한, 가장 소중한 존재들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포스터를 붙이고 있을 때 영화를 궁금해 하던 사람들, 지나던 길을 멈추고 잠시 계단에 앉아 영화를 보던 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 낭만적인 분위기의 커플들, 텅 빈 40계단에 각각의 사연을 가진 관객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함께 영화를 보는 그 광경이야말로 나에게는 아름다운 영화처럼 보였다. 내가 관객활동가로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관객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었을까?

 

중앙동 40계단이라는 고즈넉한 장소의 분위기와 야외에 설치된 흰 스크린 뒤로 걸린 노란 달, 좋은 영화 그리고 반짝이는 관객의 눈빛들. 찾아가는 달빛극장을 진행하면서 내가 본 풍경들이다. 나도 40계단에 앉아 영화를 보면서 내가 이 풍경속의 일부라는 것이 좋았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관객이었으면 좋겠다. 그냥 영화를 보는 관람객이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주체적인 사람으로서의 관객.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잊혀 진 낮달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달로서의 관객.

 

모퉁이극장의 작은 목소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 그들이 관객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알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영화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의 깊이가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의 깊이를 우리 스스로 알았을 때 달라지는 것은 아마도 내가 40계단에서 발견했던 관객들의 행복한 얼굴들을 그들 서로가 알아보게 되는 일이 아닐까.

 

 

 

- 관객활동가. 항상 질문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지 십년이 지났다. 다행히도 여전히 나는 모든 의미 있는 것들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앞으로도 질문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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