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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1_방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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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958회 작성일 17-11-0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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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11.02 짧은소설

복수

- 에드워드 호퍼의<케이프코드의 아침>을 보고 -

 

방정현

 

 

-너희 중 하나가 죠니를 죽였어.

 

그녀의 남동생은 전상자였다. 죠니는 빗발치는 총알에 잠시 얼이 빠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곤 했다. 그녀는 술에 절은 퇴역군인을 정성스레 보살폈는데, 그런 이유에서 2년 뒤, 죠니가 대구잡이 배를 타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녀는 퍽 기뻐했었다. 그녀는 수소문 끝에 선원 하나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확인했다. 선장은 꽤 물밥이 굵직해, 동종업계에서 인정받는 사내였고 흑인이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죠니를 검둥이에게 맡긴다는 게 꺼림칙했으나, 이내 그를 믿자고 마음먹었다. 배엔 동생과 같은 처지인 퇴역군인이 갑판장을 맡고 있다는 선장의 말이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동생에겐 좋은 경험이 될 터였다.

죠니는 익사했다. 평소보다 아주 조금 흐린 날, 그녀가 간만에 외투를 준비하려던 날에 남동생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고 선장이 전했다. 그녀는 오열했고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하녀 엘리자베스가 죠니가 살해당했을 수도 있다고 쑥덕거리는 것을 듣고 말았다. 그녀는 눈물을 훔쳤다.

 

-어떤 망할 깜둥이가 죠니를 죽였어.

 

그녀의 연락을 받은 선장은 모든 선원을 불러 모았다. 그녀의 분노를 이해한 건지, 대강 넘겨보려는 심산인지는 알 수 없이, 당일 죠니와 한배를 탔던 사람들이 모두 그녀의 집에 모였다. 그녀는 여태 상복을 입고 있었다. 선장은 그녀의 십구 세기 풍 폭넓은 드레스가 불편하지 않느냐는 말 대신 짤막한 유감을 표한 뒤 동료를 소개했다.

그녀의 남동생과 비슷한 시기에 입대하고 의가사 제대한 퇴역군인 출신 갑판장과 오른쪽 광대에 인상적인 흉터가 있는, 선상생활을 오래 했으며 썩 선해 보이지는 않는 에디라는 사내, 언제나 선내 엔진 옆 기관부에서 지내는 말수가 적은 기관장을 차례로 소개한 뒤, 선장이 그날은 분명 사고였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녀는 소개를 듣기도 전, 그들이 집 현관으로 들어올 때부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세상에, 온통 깜둥이였군요.

-, 부인. 그렇긴 합니다만.

-아무튼! 근래에 묘한 소문을 들었어요. 누군가가 죠니를 죽였다는 것이에요.

-금시초문이군요.

-그건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부인, 만약에 범인이 있다면 제 경력과 권위를 걸고 그 자식을 닻에 매달았을 겁니다.

그녀는 창문에 기대어 억새가 가득한 뒤뜰 사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흔들의자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정적을 깬 것은 에디였다.

-이봐 부인선생*), 파도가 그따위로 나부끼는 날 술 처먹고 갑판으로 나가는 놈이 미친 거지.

그녀는 갑작스레 고개를 돌리느라 흐트러진 검은색 조화 머리핀을 이리저리 만져 단정히 했다. 정오의 바람이 귀밑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창밖 억새 사이, 언덕이 끝나는 지점으로부터 수평선이 보였다. 에디는 아직도 항구서 망할 대구를 잡으러 사라지지 않은 정신 나간 배가 있다는 것이 적잖이 거지같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런데 그렇게나 제 궁둥짝을 사리는 놈이 과연 미친놈일까 싶은 거지. 그 자식에게 불만을 품은 놈이 있을 수도 있고, 그 어떤 불만 있는 녀석이 유인해서, , 하고 끝장낸 걸 수도 있고.

-어이. 입 조심해.

선장이 급히 그를 제지했다. 그녀는 치마폭을 만지작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죠?

-사실 부인의 남동생분이 배의 규율을 어기곤 했습니다. 용감한 군인이었다는 말과는 다르게, 날이 궂을 때면, 언제나 대강 일하다 제 침대로 들어가기 일쑤였습죠.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누가 죠니를 유인했다는 거죠?

-누구긴 누구야, 용감한 군인 나부랭이지.

-부인, 저 말을 오해하시지 않길 바랍니다. 갑판장은 그의 의무를 다한 겁니다. 누군가는 선상 군기를 세웠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저 깜둥이가 내 동생을 죽였단 건가요? 폭풍우가 치는 날 남동생을 유인해서요?

선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닙니다. 단지 그가 우리 중 유일하게 죠니를 훈육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의 권위를 존중해서라도 갑판장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충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큰 언쟁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선장실에서 모두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갑판장은 아무 말도 없이 팔짱만 끼고 있었다. 선장이 인상을 쓰며 말을 이었다.

-실제로 그를 가장 많이 걱정한 것 역시 갑판장입니다. 갑판장 역시 전쟁에 참가했기에, 그의 고통을 누구보다 이해했고 도와주려 애썼습니다. 그는 절대 부인의 남동생을 해칠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팔짱을 끼는 것과 허리춤에 손을 올리는 것을 반복했다. 선원들의 말을 도무지 들어줄 수 없겠다는 표정으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당신네들에게 지킬 예의 따위는 애초에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댁들 말을 들어보려 했던 다짐이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로 화가 나는군. 그래서 누가 내 동생을 죽였단 말이야.

-허파에 구멍 뚫린 자식이지.

갑판장이 입을 열었다.

-, , , , 닥쳐. , 뽕쟁아

-뭐라고 말더듬이 자식아? 똑바로 말해. 그따위로 말해서 내 망할 갑판장 자리도 훔쳐갔냐.

-다들 닥쳐.

 

 

*) 원문 Mr. madame을 직역. 


 

- <복수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