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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을 하는 법_김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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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4-20 15:42 조회2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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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4.21 초단편소설

이름값을 하는 법

김마음

 

 

이곳은 은설시 어정동 빌라촌의 한 근린공원이다. 동네에 크고 작은 공원이 두어 군데 더 있지만 애완견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라 동네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공원에 모인다.

나는 송원빌라 B103호에 혼자 산다. 순돌이까지 치면 둘이지만 순돌이와 나 사이에, 소위 반려라고 할 정도의 유대감은 없다. 이름값을 하듯 순하기만 했지 좀체 곰살가운 맛도 없고, 가끔은 삶에 도움도 안 되는 밥버러지라는 생각까지 들 때도 있는데, 오늘 비로소 녀석을 써먹을 기회가 왔다.

운전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고, 엑셀도 못하고, 심지어 오버워치도 못하는 나에게도 능력이 한 가지 있다. ‘개에게 물리는 능력이라고 하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능력 같아 보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아주 유용한 능력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성과 만남을 가지지 못했다. 유대나 교감이나 애정이나 그런 것도 좋지만 내가 지금 당장 목말라 있는 것은 성교접이다. 요즘에 세상이 뒤숭숭한 것은 잘 안다. 이성혐오사회라나. 자신이 싫어하는 성별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미친놈도 있었다. 죽은 이는 추모 받았지만 추모의 일부는 다른 혐오로 변질되기도 했다. 자신들을 향한 그 또 다른 혐오가 발생한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지는 않은지 깊이 생각해볼 법도 한 사람들은 그러나 대부분 사태를 방관하거나 도리어 길길이 날뛰며 또 다른 혐오를 방출했다. 어떤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 아니게 되기도 했고, 애초에 전혀 다른 어떤 것이 페미니즘을 참칭하기도 했고, 그들과 진짜배기를 구분할 의지도 마음도 없는 게으름뱅이들에 의해 진짜배기까지 도매금으로 묶이기도 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나와는 눈곱만큼도 상관이 없는 일이다. 저러다 다 같이 망해버리라지 싶을 때도 있다. 나는 내 배 주린 것, 내 눈까풀 무거운 것, 내 자지 꼴리는 것에만 관심 있다. 그리고 그 자지는 지금 한계에 거의 다다랐다. 오늘이야말로 아무 발정난 암캐년과 떡 한 판 치고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헤어지는 데에 내 능력을 이용할 날이다.

내 작전은 이렇다. 우선 개를 골라야 한다. 물려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작은 개가 적절하다. 주인이 돌발 상황을 재빨리 통제하지 못할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개면 더 좋다. 개를 골랐다면 능력을 사용해 개에게 물린다. 주인은 달려올 것이고, 이미 상대방이 나에게 한 가지 빚을 진 상태에서 만남은 시작된다. 그 불균형은 내가 원하는 바를 이뤄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이후로는 대화를 얼마나 잘 풀어 가느냐에 달렸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잔디밭에서 뛰놀던 새까만 퍼그에게 나는 의사를 송출했다.

나는 너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다. 너는 나를 물어 공격할 필요가 있다.

퍼그는 내 다리를 덥석 물었고, 멀리서 자신의 개를 지켜보던 주인이 놀라 달려왔다. 타이트한 스포츠웨어를 입은 젊은 여자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얘가 이런 적이 없는데.”

여자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앞다리를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폈다.

 

주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어울려 놀고 있는 개들을 벤치에 앉아 지켜보았다. 그들의 눈빛에 이제 우려가 완전히 가신 듯했다.

김순돌 씨요?”

그게 정말 본명이냐는 투로 여자가 순돌이에게 되물었다.

. 우리 부모님이지만 참 별나신 분들이세요.”

답지 않게 상기된 순돌이는 카투사 운전병으로 제대한 후 은설대학교 경리과에서 일하고 있다고 여자에게 솔솔 자기소개를 풀어놓았다. 둘은 이윽고 오버워치 아이디까지 교환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의 대화는 무르익었고 이제 두 강아지의 대화를 진전해야 할 때였다. 퍼그가 말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인가?

내가 말했다.

나의 주인은 나를 꿍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름이 없는 존재다. 너도 그렇지 않은가?

과연 그렇다. 그나저나 나에게 모사 적의를 보낸 것은 왜인가? 앞다리는 괜찮은가?

지금 이 만남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랬다. 물리는 건 좋아하므로 괜찮다. 잠시 후에 더 물어주었으면 한다.

잠시 후라면?

이름이 없어 이름값을 할 필요가 없는 두 존재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시간 말이다.

너는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말을 하고 있다.

오늘날 소규모 도시에서 인간과 동거하면서도 거세당하지 않은 비슷한 크기의 서로 다른 성별을 가진 이성애견 한 쌍이 발정기에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너는 지나치게 우회적으로 말을 하고 있다.

교미하자.

좋다.

우리는 잠시 주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시간을 보냈다. 좋은 시간이었다.

 

 

 

대학원 휴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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