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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_방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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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0-10 13:42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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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10.05 짧은 소설

짜잔!

방정현

 

 

삶의 어떤 지점에서 나는 아주 귀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남의 험담은 곧이곧대로 듣지 말란 것. , 험담에 동참해선 안 된다는 것을. 군대가 그러했고 나에게 다가오는 친하지 않은 혹은 친한 대학 동기, 선배, 후배들이 그랬으며, 술집에서 다가오는 쪽팔려 게임 패배자들이 그러했다. 물론 어장을 목적으로 다가오는 많은 여자도 함께 말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짐짓 순수한 척 다가오지만 결국 나를 상종 못할 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 유유히 떠난다는 것이다. 결국, 카톡 친구목록에 남은 사람은 가족뿐이었다.

 

그렇기에 대리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나는 모른 척했다. 어리바리 타는 신입을 누가 곱게 보겠는가. 회사 동료 중 대부분이 자신을 마뜩찮게 보고 있는 와중에, 회사에서의 매 순간을 혼나고 욕지거리를 듣는 와중에, 누군가가 그들을 씹기 위해 다가온다면 과연 누가 뒷담화에 동참하지 않겠는가 싶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스물여덟 해를 온전히 음모에 노출되었던 사람으로서 그녀의 대화에 어떤 반응이라도 보여선 안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웃기만 했다. 분명 탕비실 바깥에서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혹은 그녀 자체가 나를 시험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녀는 꽤 예쁜 편이었고 관리하는 듯 몸에 붙는 옷을 자주 입고 왔다. 오로지 몸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사람만이 그러한 자신감을 지닐 수 있을 테니, 옷 속에 주렁주렁 달린 뱃살을 숨긴 나로서는 부럽기 그지없었지만, 내 인생이 조금만 더 나았다면, 숱한 음모와 모함에서 조금이라도 살아남았다면, 당신 같은 여자친구를 옆에 끼고 있을 텐데 싶어 질투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그 이후로 그녀가 자주 접근해온다는 것이었다. 열댓 명 안팎의 회사에서 소문이 쉽게 퍼지리라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불과 몇 초 만에 알량한 동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그녀는 나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을 테니까. 내가 한 마디만 끔뻑해도 온 회사에 루머가 돌 테지. 혹은 탕비실, 건물 옥상, 아무도 오지 않는 비상구, 지하 창고 앞의 문에서 짜잔 하고는, 회사 사람 중 특히 나를 갈구는 선배가 나타나 욕을 한 바가지 쏟아 낼 것이 분명하다. 암 그렇고말고. 덕분에 그 모든 순간에서 나는 잘 버텨낼 수 있었다. 물론 그녀의 질문이 사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간과하고 말이다.

 

그녀는, 과장님 좀 그렇지 않아요? ㅁㅁ, 로 시작해서 ㅁㅁ씨는 말을 참 좋게 하는 것 같네요, 과장과는 다르게 말이죠, 개새끼들 내가 회사를 나가든가 해야지, ㅁㅁ씨 저 좀 도와줘요, 너무 힘들어요, 를 거쳐 ㅁㅁ씨 귀여운 면이 있네요, ㅁㅁ씨 오늘 뭐 해요? 같이 술 마셔요. 까지.

 

그녀의 테스트가 점점 악마적으로 변하면서 나는 간간히 당황하곤 했지만, 말실수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언제나 애매한 대답과 웃음만 늘어놓고는 그녀를 위로하는 데에만 신경 썼으니까. 그럼에도 지금 이 상황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흘러가 마치 통제할 수 없는 기차를 탄 기분이다. 물론 그런 기차를 탄 적은 없지만, 언제나 위험하기 전에 들던 기분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곤 했다. 아무튼, 그녀는 내게

 

ㅁㅁ, 술 너무 잘 마시네요. 나는 좀 힘든데, 우리 저기서 쉬고 가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가리킨 곳은 모텔이고, 나는 드디어 확신했다. 솔직히, 너무나도 티 나지 않나 싶었다. 원초적인 공격이라니 너무나 원초적이어서 그 의도가 너무나 뻔해 속이 다 비칠 정도였다. 이것이야말로 음모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녀와의 하룻밤 뒤엔, 아니 모텔 방 문 뒤, 더 나아가선 이 지역의 CCTV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을 게 뻔했다. 내가 무엇 한다고 얼마 있지도 않은 평판을 제 발로 차버리겠는가. 지난 모든 굴욕감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가득했다. 마치 실수로 와사비를 잔뜩 풀어 아무것도 찍어 먹지 못하는 간장처럼. 암 그렇고말고.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이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지 알기에.

 

나는 킹사이즈 베드에 누워 코팅된 유리 사이로 비치는 그녀의 실루엣을 보며 긴장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첫 섹스라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녀의 나체(에서 샤워타월을 두른 너무나 전형적인 포르노처럼)는 너무나 음란, 아니 문란했다. 마치 에덴동산의 사과처럼, 아니 의인화된 사과가 바로 저기 있었다. 그녀를 한 입 베어 물면 곧장 황야로 추방당하겠지만, 다시 창피함을 깨닫게 되겠지만, 이젠 너무나 늦어버렸다. 아아. 수밀도라니.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행했다. 나이 많은 여자의 리드 덕분에 나의 거친 미숙함은 젊음으로 치환되었다. 그녀를 깨물고 더듬었다. 그리고 그녀가 콘돔을 씌워주었다. 나는 기꺼이 위험이라는 콘센트에 플러그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감전된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물론 수식이나 형용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맥빠진 플러그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그녀는 멀뚱히 기다리다 사태를 파악하곤 이불을 앞섶으로 끌어 모았다.

 

ㅁㅁ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막 원래 그런 거야? 하하, 하하

 

어색한 침묵을 깨고 그녀가 말했다.

 

약간 몰래카메라 같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여기서 회사, , , 사람들 다 나오면 되는 건가요.

 

 

 

- 로또 당첨 희망자 방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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