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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원짜리_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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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0-10 13:28 조회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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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10.05

오천 원짜리

김재근

 

 

됐어 그냥 가던 길 가봐, 앞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학생.”

묵직하게 깔리던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너무도 강렬했던 터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가 뱉은 말과 함께 나는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는 이기호의 소설 최미진은 어디로에 언급되는 삶이기도 하다.

 

3년 전 겨울, 그는 대구 중앙로역 3번 출구 밖 모퉁이에 있었다. 위로는 벙거지 모자와 꽃 남방, 아래로는 깔깔이 바지를 입었는데 그 해괴한 모습만큼이나 행동도 특이했다. 여느 노숙자와는 달리 깡통을 들고 있지도 않았고, 무릎을 꿇고 있지도 않았으며,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흔히 노숙자들이 해야 하는,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구걸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오히려 양반다리를 한 채 명상을 하는가 하면, 돌을 가지고 놀기도 했다. 어찌나 특이했던지 행인들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한 번씩 흘깃거리거나 심지어는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했다. 나도 그 행인 중 한 명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게 오천 원을 건넸다는 사실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오천 원을 건넨 것을 후회했다. 그는 오천 원을 보자마자 역정을 냈고 나는 황급히 그 자리를 떠야만 했으니까.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감사합니다.’와 같은 반응을 생각했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나를 밀쳐냈고 땅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피웠다. 나는 거절당한 호의를 주머니에 다시 꾸깃꾸깃 집어넣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거절에서 오는 당혹감이 아닌 다른 감정이었다.

 

, 쪽팔리게. 그딴 게 다 있어.”

욕을 내뱉었다. 이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도망치듯 나오는 길에서 나는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는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럴 때마다 거절당한 오천 원이 떠올랐고, 나를 밀치고 담배꽁초를 주워 피운 그가 떠올랐으며, 여전히 왜 그가 그렇게 화를 냈는지 영문을 모른 채 답답해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모욕을 당할 만큼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그에게 잘못이 있다. 그렇게 믿으며 밤을 지새웠다.

 

그딴 게.

그 날의 분이 가시고 난 뒤 나는 문득 단어가 걸리기 시작했다. 그딴 게라니. 나는 그를, 노숙자를 그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그렇게 생각하자 애초에 내가 느낀 수치심이 어떤 것인지 모호해졌다. 나는 무엇에 화를 낸 것일까. 오천 원을 거절당한 것, 밀쳐진 것. 어느 쪽이든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를 나보다 열등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모욕을 준 것은 누구인가. 내가 아닌가. 나는 겨우 오천 원을 내밀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기대하며 그 사람에게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고민 끝에 찾아온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다.

 

오천 원을 건네받았을 때, 그가 어떤 감정에 휩싸였을지 생각해본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이를테면 한참 어린 학생이, 지나가는 듯 무심한 태도와 말투로,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팔의 각도까지, 해서 모든 방식이 그에게는 모욕으로 다가오지 않았을지. 나의 행동이 그에게 모욕이었다면 나는 호의를 가장한 오천 원으로 그를 오천 원짜리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글 한 편으로 오천 원도 채 벌지 못하는 내가. ‘모욕을 당할까 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이라는 문장을 떠올리면 나는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 92년생, 여수에서 글쓰러 올라온 언론고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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