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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짓말_김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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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328회 작성일 17-09-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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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9.28

어떤 거짓말

김준영

 

 

보통날과 다름없이 책상에 앉은 채로 느른한 오후를 맞고 있었다. 학교를 마친 시온이가 다리를 쩔뚝이며 문화의집에 들어왔다. 인사만 후딱 하고 돌아서는 시온이를 불러 세워 왜 다리를 쩔뚝이는지 물어보니 벌써 일주일도 더 전에 다리를 삐었는데 병원을 다녀오지 못해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속상한 마음에 다쳤으면 바로 병원을 가야지, 미련하게 절뚝이냐?’ 하고 잔소리만 늘어놓고는 다시 서류작업에 코를 박았다.

 

시온이는 청소년문화의집에서 운영하는 웅상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청소년이다.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는 취약계층 및 맞벌이 가족을 위해 진행하는 방과후 통합 돌봄서비스의 한 축으로, 여성가족부에서 실시되는 정책사업이며, 나는 이 사업의 PM(운영총괄)을 맡고 있다.

 

처음 청소년지도사를 시작했을 때는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SM(담임) 역할로 시작했었고, 지금은 운영총괄이 되었지만 그래봐야 두 명 혹은 세 명이 한 팀인 조촐한 사업이다. 전체운영을 맡다보니 상대적으로 청소년들과 직접적으로 교류하고 만날 시간이 줄어들었고, 예전에 SM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아이들에게 쏟던 정성은 고스란히 서류작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날도 당연히 예전 같았으면 시온이를 잡아다 앉혀서 발목 한번 보자!’ 했을 텐데, 그냥 교실로 보내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나와 함께 근무하는 SM선생님이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다. 시온이 외할아버지가 호스피스병동에 있다가 지금 시온이네 집으로 옮겼고, 시온이의 어머니는 외할아버지 곁에 24시간 붙어있는 상황이라 병원을 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차를 모는 내가 시온이랑 병원에 가줄 수 있냐고 부탁했고, 나는 좀 전의 무관심에 대한 미안함이 올라와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시온이를 정형외과로 데려갔다. 평소에 말도 많고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도 많이 하는 편인 시온이지만 남자선생님과는 어색한지 차안에서부터 병원 대기실까지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선생님이 우리를 불렀다.

 

저기 아버님.’

 

…… 순간 정적이 흘렀고, 시온이랑 나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 시온이는 아버지가 안 계신데이런 생각들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대답이 나왔다. “예 선생님 말씀하세요.” 의사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내내 시온이는 내 눈치를 살폈고, 나는 성실하게 의사선생님의 진찰을 귀담아 들었다. 결국 시온이는 2주 동안 깁스를 해야 했고, 처치실에서 깁스를 하는 동안에도 우리사이에는 어색함이 흘렀다. 주차장을 가기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시온이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 아까 불편하셨죠?”

아니, 시온이는 많이 불편했나?”

아뇨, 그냥 잘 모르겠어요.”

신경 쓰지 마라. 내가 노안이라서 그렇다. …… 가는 길에 맥도날드 아이스크림이나 먹을까?

 

그날의 아이스크림 때문인지 시온이는 차안에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부터 시시콜콜한 연예인들 이야기까지 재잘재잘 떠들었다.

 

며칠 전까지 시온이는 깁스를 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깁스를 했다며 뭔가 훈장처럼 이야기하는 녀석에게 까불지 말고 조심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다시 돌아왔다. 잠시 모니터를 보다 일어나서 교실로 가보았다. 그리고 문화의집 노래연습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시온이를 한참 보다가 다시 사무실로 왔다. 잠시 엉덩이를 붙였다가 1교시에 시작하는 탁구 수업에 다들 잘 들어갔는지 괜스레 문화의집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아이들 수업에 들어가 탁구 수업하는 모습도 보고, 쉬는 시간에는 컴퓨터를 하고 있는 남학생의 뒤에서 멀뚱히 서서 구경하기도 했다.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업무에만 매달리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하루쯤은 그냥 이렇게 멀어지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야겠다. 오늘은 한가하다고.

 

 

 

34세, 6년차 청소년지도사, 양산시청소년문화의집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