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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_김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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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9-20 17:21 조회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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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9.21 서평

너무 시끄러운 고독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김금옥

 

 

한바탕 불꽃놀이였다. 오색찬란한 지상의 색들이 모두 일어나 저 어둠 속에서 별이 되었다가 최후의 일격 후 속절없이 흩어지는 잔치마당이었다.

 

독서는 우리가 달성 할 수 있는 유일한 세속적 초월이라던 헤럴드 블룸의 말을 그대로 살아낸 듯한 주인공 한탸’,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폐지 더미 압축공 늙은 한탸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 탓에 현자가 되어버렸다.

 

더럽고 냄새나는 폐지 더미 일을 자신의 온전한 러브스토리라 생각하며, 자신이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고 여기는 한탸는 폐지 속에서 선물과도 같은 멋진 책 한 권을 찾아낼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매 순간을 살아간다. 그리고 한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책 속에 있으면서 날이면 날마다 하루에도 열 번씩 나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한다.

 

산문인데도 소리 내어 읽으면 입을 통해 나오는 문장들이 부드럽게 몸을 휘감아 오는 듯하다. 헐렁한 살을 부드럽게 죄여오는 기분 좋은 긴장이다. 아름다운 리듬감이다. 이런 문장들의 원문을 읽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처음 이 책을 두 손에 받았을 때 얇은 두께의 ‘Goods'에 가까운 양장의 표지를 가소롭게 보았다. 사전 지식 없이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을 음미하며, 한 단락을 읽는 순간, 독특한 선율에 나를 내려앉히고, 한 줄 한 줄 시인의 눈길로 춤추길 원하는 요지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분명 이이가 말하는 고독을 부족하지만 공유하면서, 어김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책의 힘을 알겠고, 독서의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겠다. 옆에서 나지막하게 일러주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저 노인의 옹알이를 다정하고 흐뭇하게 듣고 있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정녕 설명할 길 없는 인격 같은 한탸처럼.

 

자비로운 자연이 공포를 열어 보이는 순간,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공포가 인간을 덮칠 때, 그렇게나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가르쳐 준 집시여인의 연민과 사랑을 기억하는 한탸는 잠시 행복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압축통으로 들어간, 마지막 절명의 시간 속에서 기억해낸 것도 집시여인의 이름 일론카였다.

 

거대한 새 기계와 컨베이어 작업을 목격하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인 사회주의 노동당원인 젊은이들의 삶을 부브니에서 보았다. 무심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규격화된 개인주의적 문명과 현대화된 작업 방식에 밀려난 한탸는 스스로의 세계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음을 느낀다.

 

이 일을 하면서 전능의 무한한 영역에 내던져졌음을 깨닫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점점 환상 속에서 커져가는 몽상을 주체할 수 없는 지경까지 나아간 한탸는 자신이 아끼는 압축기와 영원과 무한의 길로 들어서려 한다. 마치 영화 <밀리언달러베이비>에서 매기가 환호성이 사라지기 전에 영원으로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프랭키에게 간청하듯이, 기쁨을 품고 돌아갈 수 있었을 매기처럼 압축통 속에 자신을 위한 작은 은신처를 마련한다. 자신의 지하실에서 책과 폐지와 함께 하며 스스로의 승천을 이루려 종말을 맞는다. 숭고의 순간, 미사의 순간에도 여전히 쾌활한 사내다.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라 외치는 한탸는 절망 속에서도 저항하고 도전했고 마침내 이루었다.

 

나에게 이 책은 문장을 들고 떨림과 황홀에 빠져든 한탸를 경험하는 것이었다. ‘한탸라는 이름은 인간이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고독의 정적 자체이면서 그것을 살아낸 삶이기도 하다. 유머러스하면서 그로테스크한 삶 자체를 영원히 사는 것 외에는 더 바라는 것이 없었던 한 사람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시간.

 

우리 속 어딘가 꼭꼭 숨어있을 한탸를 위한 시다. 불쑥 모습을 드러내도 반가이 맞이할 수 있기를.

 

Punto()

-파불로 네루다

 

아픔보다

넓은

공간은 없고

 

피흘리는 아픔에

견줄만한

우주는 없다

 

 

 

- 모퉁이극장 관객활동가, 회사원, 예술문화를 사랑하는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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