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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가사노동자들2_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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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9-14 13:09 조회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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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의 가사노동자들1>에서 받음. 

 

 

‘20세기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로 불리는 이반 일리치는 은폐된 가사노동의 현실을 그림자 노동으로 규정했다. 일리치는 역사적 관점에서 임금노동의 개념이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중세까지 임금노동은 무능력과 동의어였다. 자급자족적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에 임금노동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은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을 마법의 돌로 여기고, 노동을 통한 경제활동을 장려했다. 목초지에 울타리를 치고 대규모 도시 빈민노동자 집단을 형성한 인클로저 운동도 임금노동을 장려하는 시도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여성에게 울타리를 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생산적 노동(=남성의 임금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여성의 가사노동)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의 구별짓기는 남성 우월주의의 토양 위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그 결과 여성의 가사노동은 남성의 임금노동에 비해 비경제적이고, 덜 신성하며, 보이지 않아야 하는 행위로 전락했다. 일리치는 이러한 그림자 노동 덕분에 근대 자본주의의 핵심요소인 임금노동자가 경제주체로 활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가사노동자의 희생이 없이는 자본주의도 없다는 것이다.5)

 

자본주의의 태동과 함께 시작된 흔적 지우기는 21세기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홍콩에서도 계속된다. ‘노동자worker’가 아닌 도우미helper’로 명명된 홍콩의 가사노동자는 이 도시에서 가장 닫혀있는 공간 속에 갇힌 채 살아간다. 그들의 노동이 있기에 홍콩의 중산층이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지만, 그 기여에 대한 보상은 비싼 물가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낮은 임금과 한 뼘에 지나지 않는 거주공간이 전부다.

 

가사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지우는 이 도시에서 온전히 본인으로 존재할 기회도 박탈당한다. 그래서 기이한 법률과 노동조건이 만들어낸 일요일의 외출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유일한 기회이다. 홍콩에서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를 설립한 활동가 신시아 텔레즈는 필리핀 가사노동자들이 모이는 홍콩의 거리가 그들에게는 집이고, 그들 스스로일 수 있는 장소라고 말한다.6) 그들은 이곳에서 부당한 노동 관행을 중단하고 그들이 노동자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이 외침은 무척 연약하다. 외국인 가사노동이 낳은 병폐에는 글로벌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모순과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의 결함이 뒤섞여있고, 그 구조를 해체하고 재정립하는 것은 힘들고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도 홍콩에서는 고층 아파트와 쇼핑몰이 만들어낸 화려한 빛의 축제가 열릴 것이고, 현대판 노예로 전락한 가사노동자들은 그 속에서 짙은 그림자로 남아있을 뿐이다.

 

 

5) 이반 일리치에 관한 내용은 이반 일리치노승영 옮김그림자 노동사월의 책, 2015를 참고하여 요약.

6) 기사 원문 “It is where they feel at home. It’s where they can be themselves.”

출처: the guardian, 2017.3.10.

 

 

 

-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미학을 공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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