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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아 멈춰라_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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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4-20 15:29 조회1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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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4.21 초단편소설

시간아 멈춰라

김민수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내게 말했다.

너한테 시간을 멈출 수 있는 능력을 줄 거야.”

나는 들떴다. 내 마음대로 시간을 멈춘 뒤에 선생님의 바지를 내리거나, 얄미운 친구의 뺨을 갈기는 상상을 했다. 아니, 그래도 천사가 준 능력이니깐, 그 능력을 이용해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의 순간에 유치원생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병원에 계신 엄마도 나를 자랑스러워하시겠지.

하루에 딱 한 번만, 그리고 30분만 시간을 멈출 수 있어.” 천사가 말했다. “이 능력을 쓰고 싶을 땐 왼쪽 귓불을 만지면서 휘파람을 불면 돼. 그러면 바로 그 순간부터 시간이 멈추어 버린단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는 30분 동안 가만히 멈춰있게 되지. 30분이 지나고 깨어난 뒤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다음 날, 수학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쪽지시험지를 배부했다.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멈추기로 했다. 30분 동안 우등생들의 시험지를 베껴서 답안을 작성할 계획이었다. 나는 왼쪽 귓불을 만지며 휘파람을 불었다.

누가 시험 치는데 휘파람 불어?”

선생님이 외쳤다. 나는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그리곤 시계를 봤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콜록 콜록, 아이들의 기침소리도 여전히 들려왔다.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나는 분명 천사가 알려준 대로 했는데, 시간은 멈추지 않았으니깐 말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시도해봤다. 이번엔 두 손으로 왼쪽 귓불을 만지며,

, 너 나와.”

나는 차가운 복도에서 엎드려뻗쳐를 했다. 쪽지시험 점수는 0점으로 처리됐다.

 

그 날 밤 꿈에 다시 천사가 나왔다. 천사는 하얀 날개를 펼쳐 보이며 내게 말했다.

시간을 멈추는 능력, 잘 쓰더라. 그렇게 하면 돼.”

그거 안 되던데요.” 하고 내가 말했다.

아니야, 너 오늘 수학시간에 시간을 잠깐 멈췄잖아? 30분 동안 세상이 완전히 멈췄어.”

천사새끼 거짓말 오지네. 너 악마지? 너 땜에 내가 오늘 쪽지시험도 0점 맞고, 복도에서 엎드려뻗쳐도 했단 말이야.” 내가 악을 쓰며 말했다.

어머, 왜 그렇게 상스러운 소릴 하니? 욕은 나쁜 거야. 네 능력은 하느님께서 널 사랑해서 주신 능력이란 말이야. 그리고 넌 오늘 그 능력을 잘 활용했구.”

시간이 안 멈췄다니까요. 이 답답한 천사야.”

아냐, 분명히 멈췄어. 내가 봤거든.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30분 동안 가만히 멈춰있었어.” 천사가 말을 이었다. “너도 30분 동안 멈춰있었어. 깨어난 뒤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이 멈춘 걸 느끼지 못했을 뿐이야.”

나도 멈춰있었다고요?” 내가 황당해하며 말했다. “시간을 멈추는 능력인데 나도 멈춰있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나는 천사에게 화를 냈다. 천사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쩐지 조롱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후로 천사는 더 이상 내 꿈에 등장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서 나는 어른이 되었고,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시간을 멈추겠다고 귓불을 만지는 짓은 하지 않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군대에서 내게 필요한 것은 시간을 멈춰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이 빨리 흐르게 하는 것이었다.

소대장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그는 내게 어머니가 위독하시니 얼른 휴가를 나갈 준비하라고 말했다. 소대장은 내게 손바닥 크기의 소책자를 건넸다. ‘출타 장병 길라잡이라는 이름의 책자였다.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그 소책자를 읽어보았다. 어째서인지 나는 그 소책자를 읽으면서 엉엉 울었다. 거기엔 그저 출타 중 장병은 전투모를 벗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군율들만 가득했을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병원 로비에서, 누나가 나를 병실로 안내했다. 엄마는 산소 호흡기를 꽂고 누워있었다. 그 옆에서 아빠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외할머니는 괜찮다 괜찮다를 주문처럼 읊조렸다. 막상 엄마를 마주하자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얼굴은, 어째서인지 내가 알던 엄마 얼굴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원래의 얼굴보다 조금 일그러졌거나, 또는 반대로 조금 더 예쁘게 보였던 것 같다. 의사는 내게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의사가 말했다.

, 이제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심장박동이 멈추는 건 아니에요. 심장 기능이 정지해도 주변 근육들이 경련하면서 심장이 조금씩은……

잠깐만요.”

내가 말했다. 나는 엄마를 끌어안았다. 아직, 엄마는 따뜻했다. 나는 왼쪽 귓불을 만지며 휘파람을 불었다.

 

 

 

 

1991년 부산 동래구 출생

소설을 쓰고 있고, 꿈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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