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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대하여_호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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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9-07 15:58 조회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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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9.07

불안에 대하여

호나혜

 

 

불안을 두고 우리가 나눠볼 상상은 이슬라의 이야기다.

 

그녀는 도시 한복판에서 살았다. 그곳은 어떤 길을 가든 서로가 어깨를 부딪칠 수밖에 없는 번화가였다. 번쩍이는 간판 사이사이 그늘에는 유흥가가 도사렸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그랬다. 벌건 불빛 아래 들려오는 계집과 사내들의 혼탁한 웃음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언젠가 그녀가 내게 고백한 기억이 난다. 그 이유가 참으로 기이했는데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녀는 집안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주 이사를 다녔다. 동네를 벗어나지 않은 채 근방을 돌아다닌 걸 보면 그저 계약 문제였던 것 같다. 한번은 아주 작은 평수의 아파트로 옮긴 적도 있었다. 세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했지만, 과년한 처녀로서는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와 동생에게 방을 주고 나니 정작 본인은 부엌이 딸린 거실에서 지내야 했던 것이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이슬라가 복용했던 약 봉투 일부는 지금도 내 방에 있다. 현대인들에게 찾아오는 질병을 그녀도 안고 있었다. 나는 약이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이슬라에게 주의를 주었고 그래서 그녀는 독립을 택했다. 동네가 요란하고 정숙하지 못하며, 자신만의 공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실상 그 이면에는 어머니와의 트러블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녀에게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에게 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중의 돈으로 갈 만한 곳은 발전소가 들어선 공단 지역뿐이었다. 우울한 연기가 하늘을 메우고 방사능 폐기물처럼 알록달록한 색깔의 폐수가 흐르는 마을이었다. 젊은이는 모두 직장을 얻지 못한 채 선술집을 기웃거렸고 아침만 되면 술에 절은 늙은이가 길가에 나뒹굴었다. 이슬라는 작은 오피스텔에 입주했다. 새로 했는지 동네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인테리어가 말끔했다. 이슬라는 마무리가 허술해 벗겨진 벽지의 안쪽을 본 적이 있노라고 내게 말했다.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정착한 그녀는 곧 일자리를 구했다. 팻샵에서 카운터를 보는 일이었다. 손님은 전혀 없었고 길고양이는 점점 마을에서 불어났다. 아침에 문을 열고 저녁에 문을 닫는 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업무였다. 이슬라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급여를 받기가 미안했는지, 늘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다 상점가의 불빛이 모두 시들면 그제야 셔터를 내렸다.

 

하루는 그녀가 퇴근하는 길이었다. 그날도 거리는 완벽하게 어두웠다. 이슬라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면 종종 어머니 생각이 함부로 머릿속을 침입하고는 했다. 그녀는 불쾌해하며 생각을 털어냈다. 좁은 골목을 지나자 희미한 가로등이 그녀를 비추었다. 그녀는 자기 발 밑에 그림자를 보았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슬라.”

 

놀란 그녀의 뒤에는 늙은 아저씨 하나가 서 있었다. 허리가 축 늘어지고 고개만 빠끔 내민 채 팔을 마구 흔드는 그 모습은 괴기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집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구두 하나가 벗겨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현관에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두 번이나 틀리는 동안 그녀는 수없이 뒤를 돌아보았다고 한다.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가 잠금장치를 몇 겹이나 채우고 나서야 그녀는 숨을 골랐다. 물론 그녀도 이제 와서는 독립은 정말 만만찮은 일이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낯선 남자는 어떻게 이슬라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했을까? 다음날 그녀는 사장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점장은, 제복에 단 명패 때문에 이름을 알지 않았겠냐고 추측했다. 그냥 쇼윈도 바깥에서 보아도 충분히 알 법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일전에도 그런 일이 몇 번 일어났어.” 점장은 당장 바로 전의 직원만 해도 동네 주민들에게 호의 가득한 해코지를 당할 뻔한 적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는 그런 동네라며, 점장은 덧붙였다. “경찰에 민원을 넣어도 별 소용이 없더라구. 오늘은 조금 일찍 퇴근해도 좋아.”

 

점장은 감금된 아기짐승들을 살피러 진열대로 다가갔다. 인기척을 듣고 짖는 개들의 소리가 가게를 울렸다.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마을은 여전히 우중충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목적성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어.” 그녀는 어젯밤 자신이 느꼈던 불안감과 어머니와 지냈을 무렵의 불안감의 근원을 상기하다가 어떤 애틋함을 느꼈다고 내게 고백했다. “그게 뭔데?”

 

이슬라는 그날 밤도 일찍 퇴근하지 않았다. 제시간에 맞춰 청소를 하고, 한참이나 쇼윈도 밖을 지켜보다 모든 불빛이 꺼지고 나서야 셔터를 내렸다. 어둑해진 길을 걷는 동안 그녀는 조금 신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이슬라에게 들은 얘기는 여기까지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정확히 무엇을 두려워했는지조차 모른다. 단지 그녀가 이제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93년생동아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마지막 세대다아직 사랑이 남아있다는 프랑스 문장(Il reste encore l'amour)을 좋아한다불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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