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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2015)_문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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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280회 작성일 17-09-0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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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9.07 영화비평

<더 랍스터>(2015)

문영훈

 

 

여기, 난도질된 사랑이 있다.

 

속 편한 정리벽과 속 좁은 상상력의 킬링게임”,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윤종신의 <The Lobster>의 가사 중 한마디이다. 이 가사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더 랍스터>(2015)에 대한 부정적 평가라기보다는 영화가 날카로운 비유로 보여주는 현실 속 사랑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에 가깝다. 영화는 개인의 안위가 사랑의 여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가상의 세계를 상정하고 이를 통해 현실의 사랑을 해부하고 있다. 커플이 아닌 자는 동물이 되는 세계에 살고 있는 데이비드는 아내와 이별한 후 더 이상 도시에 살 자격을 잃고 짝 짓기 호텔로 잡혀가게 된다. 그곳에서는 일정한 기간 동안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거나 혹은 숲속에서 사냥 당하는 외톨이가 된다. 데이비드는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자기와 맞는 짝을 찾는데 실패하고 호텔에서 탈출해 숲속 외톨이가 된다.

 

속 편한 정리벽이라는 가사처럼 영화 속 세계에서는 사랑은 사회가 스스로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규제 안에 갇혀있다. 가령, ‘짝 짓기 호텔에서는 편의를 위해 양성애자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성애자, 동성애자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자신의 짝을 찾을 때는 어떠한 공통점이 발견되어야 한다. 이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으로 치환해 커플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규칙이다. 원래 사랑은 복잡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도 사랑은 법적인 절차와 사람들의 시선 혹은 자신에 의해 재단 당한다. 사랑의 결실이라고 말하는 결혼은 제도 하에 놓일 수밖에 없고 감정의 문제는 법적인 문제와 결부된다. 또한 스스로 상대방을 왜 좋아하는지를 납득시키기 위해서 혹은 타인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어떤 면을 찾아내서 객관화 한다. 어떤 부분이 자신과 비슷해서 좋은지 혹은 그 사람이 가진 무엇 때문에 좋은지를 찾아내서 사랑에 이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치면 깔끔하게 정돈된 짝 짓기 호텔처럼 보기 좋을지 모르지만 호텔 내부에서 행해지는 광기 어린 처벌과 같은 비정상적인 부분이 돌출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숲속에서도 규제는 계속 된다. 호텔과 반대로 진정한 외톨이로 인정받기 위해 사랑은 금지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호텔과 숲속의 지도자들이 모종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어느 곳을 선택하든 간에 편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규칙의 덫에 빠질 수밖에 없다. “속 편한 정리벽의 결과는 속 좁은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재단된 사랑은 어떤 사랑의 표준을 제시해 주는데 이에 맞지 않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게 된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는 사랑의 근거인 물리적 공통점 이외의 것들에서는 상대방의 사랑을 확신 할 수 없다. 데이비드가 근시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그녀가 그에게 어떤 도움을 베풀었는지가 아니라 그녀가 자신과 같이 근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사랑에 대한 규제는 개인에게 다른 방식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개인을 규제 밖의 무언가를 상상하지 못하게 한다. 데이비드가 공통점 찾기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현실 속에서도 사람들은 사회가 정의 내리고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조건'에서 안주하면서 동성애와 같은 다른 사랑의 모습에 대해서는 쉽게 상상하려 하지 않는다.

 

<더 랍스터>는 감독이 만들어 놓은 일정한 체계 속에 인물들을 가두어 놓고 그 속에서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관찰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영화다. 관객은 처음에는 이 기괴한 가상세계에 대해 멀찍이 떨어져서 관람하지만 결국은 현실 세계를 본떠서 만들어진 은유의 세계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속 편한 정리벽과 속 좁은 상상력의 킬링게임속에서 실제로 다치고 있었던, 난도질된 자신의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회학을 공부중이지만, 그 이외의 것에 관심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