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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 말해지지 않는 여행기_김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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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8-24 17:46 조회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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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8.24 기행문

부탄 - 말해지지 않는 여행기

김석화

 

 

UN이 정한 최빈국 중 하나이지만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GDP가 아닌 GNH(Gross National Happiness)를 국정 지표로 삼고 있는 나라.

첫눈이 오는 날이 공휴일인 나라.

 

우리의 부탄 여행은 갑작스레 시작됐다. 독서회 모임의 일원으로 열 살 정도의 나이 차를 둔 우리 세 사람은 봄볕 아래 있었고, 들뜨고 따뜻한 감정과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봄볕 아래 수다 속에서 나는 불현듯 부탄을 떠올렸고, 거기서 비롯된 말들은 다행히 흩어지지 않고 우리를 떠나게 해 주었다. 그러니 우리의 부탄 여행은 꿈꿀 시간 없이, 그리고 어떤 환상도 품지 않은 채 떠나게 된 셈이다. 여행을 함께 한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몇 년 동안 부탄 여행을 꿈꾸고, 행복의 비밀을 보고 말겠다는 어떤 다짐들을 하고 왔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공정여행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 부탄은 공정여행을 국가에서 관광 정책으로 정하고 있다는 것과 가난하지만 아이들이 여행객들에게 구걸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였다. 나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떠났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매 순간 행복과 충만감을 느꼈다. ‘행복이라는 이미지로 과도하게 포장되고 전시된 정보들을 접하고 갔다면 나는 정작 봐야 할 것들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실망감을 느낀다는 몇 사람의 감상이 그래서 나는 씁쓸하다. 물론 저마다 여행의 목적과 의미는 다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가 쏟아내는 규격화되고 이상화된 이미지에 갇혀, 여행의 순간순간을 느끼지 못하고 시선이 머무는 곳을 바라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그렇다면 나는 부탄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이것을 풀어내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여행지에서 나를 돌아보고 발견한다는 흔한 미담과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박제된 그 나라를 접하는 감상기와 여행객에게 서비스되는 현지인의 관광 노동과 현실에 발끈하는 분개담. 그 어느 사이, 그 어느 것으로도 말해지지 않는다. 이 글의 처음에 썼듯 부탄을 나타내는 설명들을 나열하기는 쉽겠다.

 

관광 체류비로 하루 200~250달러를 지불하고 그 중 65달러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의 재원이 되는 나라.

왕이 왕권을 포기하고 국민을 설득해 입헌군주국으로 전환한 나라.

왕이 일 년 중 몇 차례 지방(오지)을 다니며 국민과 직접 대면하는 나라.

국토의 60% 이상은 반드시 숲으로 유지한다는 것이 헌법에 명시된 나라.

히말라야 트레킹은 허용하지만 산의 정상을 정복하는 등산은 허용하지 않는 나라.

무상교육으로 해외 유학까지 지원되며 공부 후 유학생 대부분이 자국으로 돌아오는 나라.

모든 국가 정책이 GNH에 근거해 결정되는 나라.

전통 복장 착용과 전통 양식의 건축으로 그들의 문화를 지켜내고자 하는 나라.

 

이렇게 상징적인 것들 외에도 부탄을 수식하고 설명할 것들은 많다. 하지만 파랑새 같은 이 작은 나라를 며칠 보았다고 부탄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이방인이고 여행객일 뿐이므로 나의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도 섣부르다. 여행하는 동안 말로 표현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독특한 감정이 따라다녔었다. 무언가를 보고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없었으므로 나는 가벼워져 있었고 즐거웠지만, 또 다른 기분의 덩어리가 분명 있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을 실질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부탄이라는 나라와 나 사이의 괴리감, 그리고 괴리감의 존재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과의 충돌이 아니었을까 싶다.

 

행복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한국 사람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것이 정말 맞냐는 의심의 질문들을. 사람들은 또 말했다. 미디어에 빠른 속도로 노출되고 있는 환경과 도시에서 느껴지는 자본의 풍경들을 보며 부탄이 변하지 않고 느리게 가주었으면 한다고. 한 쪽은 낭떠러지, 한 쪽은 낙석의 위험이 있는 비포장도로를 갈 때는 또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었다면 당장 어떻게 했을 텐데 라고. 부탄의 속도가 우리 마음대로 변했다. 의심의 눈초리와 제멋대로인 기대와 나의 이상한 감정들은 결국 한국인의 시각일 뿐이었다. 또한 여행객의 감상일 뿐이었다. 그러니 부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하지만 부탄이 지닌 옳은 의지와 그 올바름을 향한 역동적인 움직임만은 느낄 수 있었다.

 

특별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어린 승려의 웃음과 시골 학교의 개학 날 만났던 아이들, 죽은 자를 위해 꽂힌 깃발들, 우리 방에 나타난 커다란 바퀴벌레를 죽이지 않고 날개를 잡고서 데리고 나간 호텔 직원, 시골 농가에서 차려준 맛있는 식사들. 가장 아릿한 것은 시골 마을을 돌아보던 중 만난 소녀들이다. 잠깐의 만남 후 헤어질 때 소녀들은 말했다. 꼭 다시 오라고, 자기는 학교가 5시에 끝난다고.

 

여행하며 만난 특별한 사람들도 생각난다. 학교에서 환경을 가르치며 환경과 생태 운동을 하는 분과 부탄의 살아있는 땅을 보기 위해 왔다는 지구과학 선생님. 공정한 국제 개발을 위해 공부하며 현재는 공정여행을 통해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한국 가이드. 소탈한 웃음을 지녔던 현지 가이드. 여행 후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나는 내가 찍은 수많은 사진들을 나누고 있으며, 한 분은 시골 학교에서 찍은 아이들 사진을 앨범으로 만들고 아이들 수대로 사진을 현상해 공정여행사 공감만세에 보내셨다.

 

여행의 순간들을 떠올릴 수는 있지만 부탄 여행에 대해 쉽게 말해지지 않는 것. 이것은 이번 여행의 후유증이 클 것을 예감한다. 누군가는 여행의 기억으로 힘든 시간을 버틸 것이고, 누군가는 많은 질문에 휩싸일 것이다. 또 누군가는 다시 부탄에 갈 것이고.

 

 

- 모퉁이극장 관객문화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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