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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장10] 3년차1_윤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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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665회 작성일 20-12-1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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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장10]

3년차

윤이삭

 

 

  최준용 씨는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도서관의 책장을 힘껏 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최준용 씨는 구립도서관에서 근무한지 2년차 되는 사서였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사서교육원에 들어갔다. 교육원에서 1, 시험 준비에 16개월을 들여 9급 지방직 사서공무원이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책을 좋아했던가.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최준용 씨는 대학 시절 한 교양 강좌를 들었다. 시작하기만 하면 졸음이 쏟아지는 강좌였다. 동기들과 밤새 술을 마신 탓도 있었다. 돈을 각출해 양주를 까고, 복잡다단한 전자음악을 들었던 것 같은데. 동기 자취방에 누워 잠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나.

 

  동기는 수업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최준용 씨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혼자 대학으로 향했다. 높은 계단이 하늘과 이어진 듯 아득하게 보였다. 겨우 계단을 오르니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최준용 씨는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을 했다. 무엇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강의실에 엎드려있으니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강사가 들어와 이리저리 떠들어댔는데…… 갑자기 조용해졌다.

 

  “거기 학생. 학생? 어이 이봐.”

  최준용 씨는 고개를 들었다.

  “그만 자고, 일어나서 이거나 읽어봐.”

  강사가 스크린을 가리켰다.

 

  누군가가 쓴, 어떤 제목의 시였다. 최준용 씨는 의미를 곱씹을 겨를 없이 그저 중얼거렸다. 시를 모두 읽고서는 자리에 도로 엎어졌다. 그때 감은 눈 너머로 뒤늦게 시구가 두둥실 떠다녔다.

 

  ‘재미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몰랐다.1)

 

  최준용 씨는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부쩍 그 시구를 떠올렸다. 그 시를 읽고서 술을 끊었다. 틀어박혀 책을 뒤적거리고, 공부를 하고, 앞날을 계획했다. 그렇게 사서가 되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정말로 재미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지 부쩍 의문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구원받을 필요가 있나. 구원을 받으면 무엇이 좋나. 누구로부터 구원을 받고, 무엇을 위해 구원을 받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1) 정한아, 나는 왜 당신을 선택했는가-론 울프씨의 편지, 울프 노트, 문학과지성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