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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근본주의04] 코뿔소_정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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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496회 작성일 20-10-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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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근본주의04]

코뿔소

정진리

 

 

*<소설 근본주의>는 세상의 모든 현상을 소설로 풀이하는 편협한 코너입니다.

 

외젠 이오네스코의 코뿔소(1957)는 희곡으로 유명한 작품인데, 사실은 1959년 각색된 것으로 소설이 먼저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코뿔소가 거리를 나도는 어느 일요일부터 시작한다. 화자(훗날 베랑제로 지칭되는)는 어느 카페 테라스에서 이 덩치 큰 짐승이 상점들의 유리창을 스치며 지나가는 광경을 본다. 놀랄만한 광경이지만 원래 민감한 성격이 아닌데다 전날 술에서 덜 깬 화자는 그저 심드렁하다. 반면 부리나케 도망간 시민들은 소동이 잠잠해지자 끊임없이 코뿔소 얘기를 주고받는다.

한바탕 소란에 뒤이은 이야기들의 반복. 이 소비되는 말들이 코뿔소전반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친구 장은 일요일마다 지나는 코뿔소가 뿔이 하나인지 두 개인지를 두고 아시아산인지 아프리카산인지를 따진다. 그런데 그곳은 코뿔소가 어느 부인의 고양이를 치어 죽이고 간 자리다. 하지만 군중은 부인의 슬픔에는 크게 관심 갖지 않는다. 한 신사는 그 코뿔소가 지난 주 지나간 놈인지 아니면 새로운 놈인지 식료품 주인과 언쟁을 벌인다.

 

원래 화제는 그것이 아니었는데 얘기가 빗나간 거예요. 처음에 여러분이 알고 싶었던 것은 오늘 출현한 코뿔소가 지난주에 나타났던 놈인지 혹은 다른 놈인지였죠. 그러니까 그것부터 선을 그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뿔 하나짜리 동일한 코뿔소를 두 번 보았거나 뿔이 둘 달린 동일한 코뿔소를 두 번 보았는지 모릅니다…….(중략)”

 

이튿날 신문에는 짓밟힌 고양이라는 제목으로 두 줄짜리 기사가 나갈 뿐이다. 코뿔소는 매주 지나가고 사람들은 뿔이 한 개이니 두 개이니를 두고 편이 점점 갈린다. 머리가 혼란스러운 화자는 아시아산의 뿔이 하나인지 둘인지 아프리카산의 뿔은 몇 개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논쟁이 과열되는 와중에 사람들의 머리에 뿔이 나기 시작한다. 친구 장도 직장상사도 연인 데이지도 모두 코뿔소로 변한다. 그렇게 사회는 모두 코뿔소가 되지만 오직 화자는 인간으로 남는다. 결코 짐승으로 변하지 않으리라 선언하며 화자는 너무나도 흰 자기 몸둥아리와 털이 난 다리를 힘없이 바라본다.

조국, 추미애, 이제는 강경화. 요즘 뉴스를 보면 다른 듯 같은 말들의 반복이다. 저 공직자들의 흠결이 과연 우리의 사고 전반을 장악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다뤄야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언론은 오직 코뿔소의 뿔 개수에만 집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슈에 휘둘리는 우리들은 여러 논쟁에 빠져드는가 하면 서로 편을 갈라 헐뜯는다. 코뿔소의 태생 여부가 과연 고양이를 잃은 부인의 슬픔보다 더한가?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갈수록 헷갈리는 지금, 우리의 이마에도 뿔이 자라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지난 추석 전날, 경남 사천시의 한 아파트에 사기꾼시공업시행사는더욱사기꾼노임 주라개자식이라는 붉은 글씨가 길게 걸렸다. 임금체불에 항의한 50대 페인트공이 줄 하나에 몸을 맡기고 피를 토하듯 요구사항을 적은 것이다. 그러나 이 뉴스는 사천의 지역신문에 한 번 나오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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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품격 있고 무엇이 천박한 뉴스인가. 루마니아 태생으로 혼탁한 세상을 두 눈으로 목격했던 이오네스코의 코뿔소는 그의 다른 작품인 깃발이나 의무의 희생자처럼 독일 나치와 같은 파시즘에 대한 풍자이며 그와 흡사한 독재 이데올로기에 대한 인간의 드라마이다. 그런데 파시즘이 절멸한 2020, 이 소설이 왜 과장처럼 내 마음 깊이 와 닿는가. 정말로 파시즘은 사라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