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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다문(文)07] 돼지를 위한 변명_박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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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290회 작성일 20-10-2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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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다문(文)07] 

돼지를 위한 변명

박창용

 

 

돼지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단단하고 뭉툭한 코로 바닥 잘 훑도록 치열하게 진화한 끝에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게 되었다고 다들 믿어 의심치 않는, 슬픈 짐승에 대한 질문이다. 살아있는 돼지를 실제로 본 사람조차 거의 없을 터인데 하늘을 보는 돼지라니, . 삼겹살 한 점 더 구울 생각이나 할 것이지.

 

하늘을 올려다보는 돼지를 골몰하기 이전에 이미 내 삶에 살아있는 돼지가 있었다. 내 일상 전반이 돼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고나 할까. 나는 최초의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사춘기까지 부모님의 돼지 농장이 있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고, 비전문가(?)는 맡을 수 없는 미세한 돼지 냄새가 그 시절 살던 집과 아버지의 트럭과 어른들의 몸에 배어 있었다. 어린 나에게, 나와 가족과 돼지는 따로 분리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필연적으로 돼지가 미운 시기가 있었다. 형과 내가 연달아 수능을 준비하던 무렵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미운 마음은 사실 부모님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되었다. 당신들께선 우리 형제의 수험생 시기, 넓게는 학창 시절에 돼지를 키우는 데 여념이 없어 제대로 된 뒷바라지를 하지 못했노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한 마음을 이따금씩 내비치시는 통에 나는 나와 가족과 돼지를 점차 분리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나아가 당신들의 말마따나 돼지 때문에 내가 불행한 것은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서운함을 내 마음 한구석에 품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입시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다스리는 게 불가능한 청춘의 불안을 부모님과 돼지의 결탁으로 비약하여 가끔 탓하던 짓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까지 이어졌다. 더욱 풀어서 떠올려보자면, 굶어죽기 딱 좋은 학과를 나와 여러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방황하던 몇 년, 그 중 부모님의 돼지 농장에서 일을 거들며 신세를 지던 대략 일 년 그 중 어느 날까지.

 

역할을 다한 모돈(?, 새끼를 얻기 위해 키우는 암퇘지) 몇 마리를 모돈 막사에서 출하 막사로 옮기던 날이었다. 한 마리가 원래 성질머리가 더러웠는지 아니면 제 팔자가 한스러웠는지 농장 한 복판에 멈추더니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드라이버로 엉덩이를 쿡쿡 찔러도 요지부동, 200킬로그램이 넘는 거대한 몸으로 소리만 더 크게 키우던 끝에 사람도 돼지도 지쳐서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아버지는 담배에 불을 붙이셨고 어머니는 그늘 아래에 앉으셨다. 나만 화가 제일 늦게 풀렸는지 버티는 녀석을 씩씩대며 바라보았다. 그렇게 꽥꽥거리던 녀석이 문득 뒷다리를 접어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더니 몸을 쭉 펴서, 비스듬하게 하늘로 고개를 쳐들었다. 녀석에게는 얼마만의 하늘이란 말인가! 똥오줌과 어둠 속에 갇혀 살던 일생에서 벗어난 순간을 녀석은 짧고 깊게 만끽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돼지를 그저 돼지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생계''존재'에 대한 체득 덕분이었으리라. 돼지가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당신들께서 하시던 일들, 돼지의 똥을 치우고 사료를 먹이고 돼지를 옮기고 출하시키는 과정을 몸으로 겪으면서 터무니없이 자랐던 미움들을 천천히 삭이다 끝내 온전히 털어냈다. 돼지가 바닥만 훑는 줄 알았던 코를 쳐들어 하늘을 보듯 나 또한 치기와 아집을 잠시나마 접어두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순간을 겪었달까. 그리하여 바라보니 그러했던 것이다, 나는 나, 부모는 부모, 돼지는 돼지일 뿐, 각자에게 용납된 삶은 살아내는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