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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생의 독서일기07]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_김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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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473회 작성일 20-10-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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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생의 독서일기07]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 Raymond Carver

- 레이먼드 카버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소고

  김재홍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1938-1988)는 그가 쓴 한 에세이에서 그 자신이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태어난 두 아이의 양육비를 벌기 위해 재빨리 완성할 수 있는 시와 단편을 써내야 했던 시절을 술회한다.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연 소설가, ‘아메리칸 체호프’(카버는 그가 살아 있을 동안 체호프를 동경해왔다.) 등의 수식어는 카버가 훌륭한 단편소설 작가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가 단편소설 쓰기를 통해 이룩한 예술적 성취를 증명한다.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 Will you please be Quiet, please?를 통해 재능을 확실하게 인정받은 것을 시작으로, 편집자와 소설가의 치열한 대립 관계의 예시로 끊임없이 회자되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을 거쳐, ‘미니멀리스트라는 그 자신이 부여받은 칭호를 완전히 넘어서고, 소설을 통해 예술적 인식의 지평을 그야말로 거대한 건축물처럼 확장시켜보고자 했던, 카버 문학의 정수 격이라 할 수 있는 대성당 Cathedral에 이르기까지. 그가 남긴 작품은 하나하나가 놀라운 예술 작품일 뿐 아니라 연대기적으로도 한 인간의 생과 글쓰기의 관계를 톺아보기에 충분히 훌륭한 자료이다.

그런데 카버는 자신을 그야말로 밑바닥까지 추락시켰던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후카버는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였고, 결과적으로 술을 끊게 되고 나서는 자신을 회복된 알코올 의존자라고 부르기도 한다인생의 안정된 시기가 찾아오고 병으로 인한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장편소설에 대한 열망을 어느 정도 품고 있었고 끝내는 이루어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단편소설을 써야만 했던 생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꽤 재미있는 지점이다. 카버는 에세이 정열(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수록)에서 그 자신이 단편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경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1960년 중반의 어느 날, 그는 빨래방에서 가족의 빨랫감을 가득 실은 카트를 앞에 두고 홀로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마침내 건조기가 한 대 멈추자 그곳으로 갔는데, 건조기를 사용하던 빨래 주인이 와서는 옷이 충분히 마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동전을 넣고 건조기를 한 번 더 돌렸다고 한다. 그 순간 카버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무력감이 찾아왔고, 그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무게와 두 아이의 존재는 그야말로 생생하게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자신이 무언가에 지속적인 집중을 하기 힘든 모진 육아의 시기를 보냈다고 말한다. 물론 카버는 오직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성숙한 기쁨과 만족(레이먼드 카버,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Call if you need me, 최용준 옮김, 문학동네, 2015, p.187.)을 아이들을 키우며 느꼈다고도 말하지만, 그 시기, 여느 작가라면 다 자신의 재능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한 발자국씩 천천히 나아가야만 하는 시기에 겪었던 전쟁 같은 육아의 경험은 그가 단편소설에 천착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한다.

 

카버의 단편 중에서 가장 좋아하고 인상적으로 감상한 작품을 꼭 하나 꼽자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대성당수록)이라는 작품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작품 외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이 소설이 소위 두 가지 버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소설집 대성당에 실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작품은, 그 이전에 출간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수록된 목욕이라는 작품에 카버가 살을 덧대고 고쳐 다시 세상에 선보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자신이 전에 썼던 작품을 퇴고하고 수정하여 다시 선보이는 일은 비교적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카버의 작품 또한 전후 사정을 빼면 일견 흥미로운 발견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먼저 쓰였던 작품 목욕이 고든 리시라는 편집자에 의해 공격적인 편집이 가해졌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논의 주제이다.

고든 리시와 카버와의 관계는 고든 리시가 에스콰이어의 편집장으로 있을 때부터 시작되어, 해당 잡지에 카버의 작품이 실리고 리시가 카버 작품의 본격 편집 작업을 맡는 것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와 두 번째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두 권 모두 리시가 편집에 관여했으며, 특히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리시에 의해 단편들이 많게는 70% 가까이 편집삭제이 가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선 두 권의 소설집으로 카버는 미니멀리스트라 불리게 되고 그의 인지도는 급격히 높아진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고든 리시가 편집자로서 꽤 매력적인 눈과 스타일리시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확실히, 리시의 편집이 가해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대부분의 단편은, 말해진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 일종의 서브텍스트적인 요소가 충격과 울림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리시는 카버의 작품에 세련미를 더하긴 했지만, 작가와 작품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인간미나 깊이가 결여되어 있었다. 주지하듯이, 작가가 직조해낸 글은 일종의 생살과도 같이 표현되곤 한다. 그만큼 작가는 그 자신의 혼과 정수를 일정 정도 작품에 담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런 맥락에서 리시가 카버의 작품을 거침없이 잘라낸 것은 카버에게 말할 수 없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전에는 카버의 작품과 고든 리시의 편집을 거친 작품 중 어느 버전이 더 훌륭하냐는 논의는 일견 불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카버는 작품을 고치는 대가로 인기를 얻지 않았는가? 그러나 카버 자신에게 각각의 단편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조금만 더 숙고했더라면,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가 자기 작품이 난도질을 당한 채로 세상에 선보였을 때 느꼈을 비참함과 패배감에는 둔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카버는 결과적으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작품을 통해 이런 내 반성이 무색할 만큼 탁월하게 그가 추구한 깊이가 옳았음을 증명해낸다.

스타일리시한 작품도 그 나름의 매력은 있겠지만, 카버 본인이 잘려나갔던 생살을 정성스레 붙여 새로 완성한 작품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생명력과 온기와 위로가 담겨 있다. 카버의 이러한 작업잘려나갔던 작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려 했던은 인간은 쉽게 패배할 수 없다는, 좌절했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자 놀라운 의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 같아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어쩐지 조금 감상적이 되기는 했지만, 나는 카버가 다시 일어났고 승리했으며 그 승리의 영광이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는다.

그의 소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 어떤 깊이로 다가올지는 아직 읽지 않은 익명의 독자에게 맡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레이먼드 카버,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손성경 역, 문학동네, 2004.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정영문 역, 문학동네, 2005.

대성당, 김연수 역, 문학동네, 2014.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최용준 역, 문학동네, 2015.

캐롤 스클레니카,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 고영범 역,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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