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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장06] 계단을 지나_윤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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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9-24 12:40 조회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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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장06]

계단을 지나

윤이삭

 

 

  “네가?”

  오랜만에 신발끈을 묶었다. 재만은 과장스럽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심 반가운 모양이었다. 재만과 함께 나선 것은 너무 오래 갇혀있어서였다. 하반기 신입 공채가 줄면서 시간이 붕 떴다. 준비를 했던 회사는 아예 공고를 내지도 않았다. 계획이 어긋나고, 자꾸만 늘어나는 시간이 기운을 날로 잡아먹었다.

 

  전염병 탓에 어디 쉽게 나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재만이 새로 살 집을 구하러 간다기에 선뜻 동행했다. 외출할 나름의 이유가 생겨 감사할 지경이었다. 바깥은 한여름 햇볕이 날카롭게 내리쬐고 있었다. 에어컨 아래에서 뒹굴다보니 여름인줄도 몰랐다. 재만은 진짜 놀랐던 것일지 몰랐다. 이 더위에 네가? 하고 물은 것일 수도.

 

  마스크 안에 뜨거운 입김이 고이고 나는 외출을 금방 후회했다. 얼마가지 않아 구멍가게 차광막 아래에 서있는 두현이 보였다. 에어컨 아래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중에 두현이 하도 반가워하기에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두현은 내 팔을 흔들면서 네가 어쩐 일이냐? 네가?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부동산은 이쪽이 많아.”

  내가 길을 가리키니 재만이 고개를 흔들었다. 재만은 한참 앞장서더니 골목 너머의 게시판 앞에 멈춰 섰다. 게시판은 전세, 월세가 큼직하게 적힌 전단지로 가득했다. 재만은 전단지의 문어다리처럼 나뉜 쪽지를 몇 개 골라 찢었다. 재만이 다시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으슥한 골목에 접어들어 재만이 이리저리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 , 하며 공손했다. 골목 하수구 옆에는 푸른 이끼가 깔려있었다. 골목 깊숙이 들어가다가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 재만은 우편함을 뒤적거려 열쇠를 찾아냈다. 2층으로 올라가 현관에 열쇠를 꽂자 달칵, 돌아갔다. 커다란 방 두 개가 정면으로 보였다.

 

  “이 정도면 혼자 살기 충분하네.”

  내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어서 자취방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둘은 방을 둘러보며 별말이 없었다. 재만이 내 자취방에 머무른 지도 3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남은 방에 재만이 지냈기에 별 불편함이 없었는데, 정작 재만 본인이 불편한 눈치였다.

 

  “50020이랬나.”

  두현이 물었다. 재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애꿎은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너무 비싼 거 같아.”

  두현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뭔 소리야. 요새 50020이 어딨다고. 싸구만.”

  얘들이 요새 물가를 모르나. 재만은 멋쩍게 웃기만하더니 현관 바깥으로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집을 서너 군데 더 살폈다. 집주인이 직접 나오기도 하고, 우편함을 뒤져 열쇠를 찾기도 했다. 골목은 더 깊어지면서 그늘이 졌다. 해가 지는 건지, 골목 틈으로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건지 알 수 없게 어둑했다. 재만은 덥수룩한 수염의 집주인에게 월세를 깎을 수 있냐고 물었다. 집주인은 난감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20에서 어떻게 더 깎나. 청년들이 세상물정을 모르네.”

  열이 뻗쳐 되받아치려다 재만이 발길을 돌려 참았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내가 편의점에서 음료수 세 개를 사서 나눴다. 하늘이 주홍빛으로 노을이 지는데도 더위는 가실 줄 몰랐다. 재만은 멍한 얼굴로 음료수를 홀짝였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 더 있으래도.”

  재만은 대꾸 않고 음료수 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느덧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어둑한 골목을 가로지르자 시장통이 나왔다. 장사를 마치는 분주함이 곳곳에 느껴졌다. 비릿한 생선 냄새와 시큼한 김치 냄새가 마구 뒤섞였다. 냄새는 마스크 너머로 코를 찔러왔다. 생선 가게 주인이 고무 대야에 담긴 질퍽한 무언가를 하수구에 쏟아 부었다.

 

  재만이 생선 가게 모퉁이를 돌아 멈춰 섰다. 전화를 걸자마자 1층에 있는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노파가 무릎을 짚고 나왔다. 방을 살펴보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닌가 했는데 노파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인상 좋은 청년들이네. 나는 다리가 아파서이. 올라가서 천천히 살펴보셔.”

  재만을 따라 좁은 계단을 올랐다. 어깨가 양쪽 벽에 닿을 것 같아 한껏 움츠렸다.

 

  계단 끝에 미닫이 샷시문을 열자 현관이 보였다. 나는 와, 하고 짧게 탄식했다. 커다란 공간에 그 크기를 압도하는 우람한 기둥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바닥엔 노란 장판이 깔려 있었는데, 누가 시공했는지 엉망으로 비대칭이었다. 구석구석 곰팡이가 피어있기까지 했다. 기둥이 놓인 주방 맞은편에 큰 방이 있었는데, 큰 방은 작은 방으로 이어지다가 다시 작은 방의 문을 열면 주방이 나왔다.

 

  나는 사진을 찍었다.

  “술래잡기나 하면 재밌겠는데.”

  원형으로 이어진 공간을 뛰어다니는 우리 셋이 떠올랐다.

  “근데 화장실은 어디 있대?”

  두현이 물었다. 이런 이상한 집은 고민 않고 걸러야 할 텐데, 화장실은 왜 찾는담. 그러나 두현이 아무리 찾아봐도 화장실은 나오지 않았다. 셋이서 현관을 나서는데 두현이 내 어깨를 두들기고는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있었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층계참에 새하얀 변기통이.

  밖으로 나서면서 어딘가 께름칙했다.

  “뭐 저런. 그지같은 데가 있냐.”

  고개를 흔들며 골목을 나서는데 노파가 멀리서 우리를 불러 세웠다.

  “청년들 거기 있어봐!”

  내가 욕한 것을 들었나 싶어 도망갈까 했다. 그러나 재만이 우두커니 서서 노파를 기다렸다. 노파는 절뚝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와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이거 남자한테 좋은 거여. 그리구, 월세는 10만원에 해줄 수 있어. 한번 연락주이.”

  노파는 우리를 향해 깊이 고개 숙였다. 우리도 고개를 마주 숙여 어정쩡하게 인사를 받았다.

 

  에어컨을 켜놓고 외출한 터라 자취방은 서늘했다. 우리 셋은 라면을 끓여먹었다. 노파가 건넨 비닐봉지 안엔 말린 표고버섯이 가득 들어있었다. 라면에 들어있는 자잘한 버섯과는 크기가 달랐다. 버섯을 가득 넣고 라면을 끓이니 구수한 향이 한껏 더했다. 나는 허겁지겁 면을 빨아들이고는 버섯까지 잔뜩 입에 털어 넣었다. 그대로 에어컨 아래에 누웠다. 재만과 두현도 나란히 옆에 누웠다.

  “그래도, 거긴 안갈 꺼지?”

  재만은 대답이 없었다. 누워있어서 재만의 표정도 보이질 않았다. 잠이 쏟아졌다. 피곤한 하루였다. 잠에 빠져드니 비로소 재만이 보인다. 재만은 방을 가로지는 기둥을 따라 맴을 돈다. 재만은 화장실이 급해 방을 동동 구르고 있다. 재만아, 거긴 화장실이 없잖아. 내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재만은 어쩔 줄을 모르고 몸을 배배꼬다가 그만, 현관을 나선다. 급히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린다. 이어 퐁당, 퐁당하는 소리가 계단에 낮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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