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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죽었다_윤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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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9-24 03:21 조회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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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죽었다"

 

 

윤정아

부산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범죄분석요원 

 

 

1995년 초여름, 서울의 한 아파트. 아침 일곱 시에 의사인 남편은 자신의 병원으로 출근했고, 그로부터 한 시간 반쯤 흘렀을 무렵 그 집에서 흰 연기가 새어 나오는 것이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은 화재를 진압한 후 화장실 욕조에 사망해 있는 모녀를 발견했다. 두 사람의 목에는 끈으로 졸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남편이 출근한 사이 아내와 딸이 살해당했다. 수사관들에게는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모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외부의 침입 정황이나 물색흔은 없었고, 이렇다 할 다른 용의자도 없었다. 당시 집 안에서 났던 불, 욕조에 담긴 물의 온도, 피해자들의 위 내용물 등으로 사건이 발생한 시간을 추론하려 했으나 치열한 논란 끝에도 확실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와 유사한 사건들도 있다. 2011년 겨울 서울의 한 아파트. 남편이 전문의 시험을 본 다음날 아침, 만삭의 아내는 출근을 하지 못했다. 아내는 욕조에 쓰러져 사망한 채 귀가한 남편에 의해 발견되었다. 2019년 서울의 한 주택. 남편과 함께 잠들었던 아내와 아들은 남편이 나간 뒤 침대에서 칼에 찔려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다. 

 

"아내가 죽었다"는 신고를 받고 집에 도착한 수사관들이 느꼈을 고뇌가 전해진다. 유가족이 범인이라는 의심이 들더라도 이를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부부 사이에 어떤 복잡한 감정이 오갔는지 누가 알 수 있을까. 부부가 살다 보면 싸울 때도 있는 게 아닌가. 함께 살던 집 곳곳에서 남편의 유전자가 검출되는 것은 당연하다. 범행 도구를 비롯하여 어떤 확실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세 남편은 모두 강력하게 무죄를 주장했다. 그렇지만 다른 용의자도 없는 상황에 모든 정황이 남편을 가리키니 어쩔 수 없이 수사관은 간접증거만으로 남편을 추궁해야 했을 것이다. 

 

현장에서 이런 사건을 접할 때는 프로파일러라 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도 완전범죄를 저지르기는 어렵지만 명확한 증거 없이 피해만 남아있는 사건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천재적 직감을 가진' 프로파일러와는 다르게 실제 프로파일러들은 타인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타당한 논리를 세우기 위해 세밀하게 자료를 살핀다. 사건 관계자들의 심리를 더 깊이 살펴보고, 진술을 분석하고, 증거들을 조합하여 현장을 재구성한다. 문헌을 검색하거나 유사사례를 찾아내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을 추려내기도 한다. 쉽게 풀리는 사건은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 것이 당연한데도 모든 사건이 새롭고 어렵게 느껴진다. 

 

모든 사건에 최선을 다함에도 때로는 수사 방향이 실체적 진실을 향해 가고 있는지 불안할 때가 있다. 수사-기소-재판으로 이루어지는 형사사법절차의 첫 단추가 수사라는 점을 상기하면 오류의 가능성이 더욱 두려워진다. 서두에 언급한 세 사건 중 두 건은 확정판결이 났는데, 고도의 법적 훈련을 받은 법관들마저도 일치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유무죄를 오갔다. 심지어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사건 발생 8년 후에 무죄가 확정된 사건도 있다. 수사가 순탄치 않았던 사건이었던 만큼 재판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남편은 완전범죄를 꿈꿨던 냉혈한일까, 가족을 잃고도 무고하게 내몰린 피해자일까. 실체적 진실을 사후에 밝히는 것이 가능할까, 판결문은 그저 법적 진실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해소될 리 없음에도 평생 풀어야 할 질문이다.

사건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언론 기사, 방송, 인터넷을 참고하였다.첫 번째 사건 담당 형사와 변호인의 글을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당신에게는 어떤 주장이 더 설득력 있는가?

 

 (수사관) 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59

 (변호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16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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