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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 넘기는 소리06] 두 회의주의자_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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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347회 작성일 20-09-17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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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회의주의자

지하

 

 

두 회의주의자

 

아폴론이 태양 마차를 끌고 나타난다. 이성이 대지를 비춘다. 기나긴 중세를 넘어 근대가 도래했다. 무엇이 중세와 단절하고 근대를 도래하게 했는가? 바로 회의(懷疑).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우리가 쌓아올린 것들이 사실은 사상누각이었다면? 그렇다면 과감히 모두 무너뜨리고 다시 지반을 다져보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르네 데카르트 ( 1596 ~ 1650 )

 

중세에서는 모든 논의가 신으로부터 출발해 신으로 도착한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의심한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아무리 의심해도 의심할 수 없는 진리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우선 감각적 경험을 배척한다. 그것은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어쩌면 이성을 통해 알 수 있는 수학도 악마의 조종에 의한 잘못된 지식일 수도 있다. 끝없는 가지치기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무언가를 의심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신으로부터 이끌어내지 않고 인간의 생각에서 이끌어낸다는 점, 이것이 근대성의 시작이다. 인간이 신의 아래에sub 던져진ject 존재에서 벗어나 당당한 주체subject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이렇게 신이 권좌에서 물러나고 이성이 자리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데카르트에 따르면 생각하는 나cogito’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져 있는 관념들이 있다고 말한다. 이를 본유관념이라 한다. 생각하는 나는 이런 본유관념들을 통해 외부의 대상들을 지각할 수 있다. 또한 데카르트는 여기에 명석판명이라는 진리의 기준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데카르트는 과학의 확실성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데카르트는 두 가지 실체(實體)를 말한다.(여기서 실체란 어떠한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체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체그리고 물체와 구분되는 정신’.(그러나 정신이 왜 실체인지 명백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는 물체이며 이 육체에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데카르트는 육체와 정신의 결합을 나름 설명하려 했지만 이 또한 충분하지 못했다.) 물체와 정신의 차이는 연장하는 실체인 물체는 무한히 분할 가능하지만 사유하는 실체인 정신은 분할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불구덩이에 던져버려라. 그 책엔 궤변과 환상 말고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 데이비드 흄 ( 1711 ~ 1776 )

 

데카르트는 진리의 기준을 인간이 타고난다고 설명했지만 이런 그의 생각에 반하는 철학자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흄이다. 흄은 데카르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과학의 확실성을 마련하려 했는데, 그는 과학이 확실한 지식체계라는 것을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보여주려 했다. 그에 따르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잘못된 지식일 뿐이다. 이데아나 신, 실체와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들은 경험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무의미한 것이다.

흄은 인상impression과 관념idea을 구분한다. 인상이란 직접 감각자료로부터 경험한 지각내용이다. 그리고 그 인상을 다시 떠올리는 것, 그것이 관념이다.(얼핏 둘은 같아 보이지만 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에 따르면 지식의 기원은 인상에서 오는 관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는 과학적 탐구를 할 때 인과관계에 의존한다. 원인과 결과에 필연적인 관계가 있을 것이라 판단하는 것이다. 흄은 이것을 착각이라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을 통해 얻어낸 지식들은 그저 우연적이며 습관에 불과한 것이다. 인과관계는 경험으로 포착되지 않으며 원인과 결과라는 관념의 결합일 뿐이다. 이렇게 흄은 인과관계를 부정해버리게 되고, 이에 따라 과학적 법칙들도 우연적이며 습관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흄은 경험을 통해 과학의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지만 오히려 경험을 통해 과학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합리론과 경험론

 

한 사람은 이성을 통해, 다른 한 사람은 경험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지식의 주춧돌을 놓으려 했다. 그러나 전자는 지나치게 사변적이었고 후자는 오로지 경험 가능한 것만을 믿으려 했다. 무언가를 얻으려 했지만 우리 손에는 이성경험이라는 두 단어밖에 남지 않았다. 이 텃밭을 믿고 참된 지식을 수확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인걸까? 다시 묻는다. 아폴론의 마차는 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