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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영화의 관객들05] 일상의 ‘선물’이라는 경계_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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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450회 작성일 20-09-0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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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영화의 관객들05]

일상의 선물이라는 경계

변혜경

 

 

주어지거나 인도된 물건에 의해 표현되는 위험이 매우 오래된 게르만의 법과 언어에서보다 더 잘 느껴지는 곳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gift’라는 말의 이중적인 의미, 즉 이 말이 한편으로는 선물(don) 또 한편으로는 독(poison)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설명된다.”(증여론, 244) 이렇게 선물이 지나치면 이 될 수 있음을 게르만어의 어원으로 모스는 보여준다.

 

흔쾌히아야하는의무의 역설이 자연스럽게 가 닿지 못할 때 선물은 독이 된다. 받는 것이 불쾌한 경우는 어떤 때일까. 선물이 환심과 회유의 의도로 채색되었음이 감지될 때, 나를 향한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아닐까. 자선과 호의의 선물이 모욕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주는 자의 진심을 오롯이 느끼며 흔쾌히 주고받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목숨을 건 도약이라는 표현에 묻어나는 고통을 증여의 어려움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기까지 한다.

 

무언가를 주어서 오히려 관계가 악화되거나 되돌릴 수 없는 경우는 흔하다. 선의와 호의로 한 말들 끝에 돌아오는 적대감, 모처럼의 식사 대접이 대접받는 이에게 가하는 부담감이나 불쾌감 등등 말이다. 여기에 받는 이에게 미치는 선물의 독은 고스란히 주는 자에게까지 모종의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선물은 주고받는 방식에 지혜가 부족하면 가차 없다. 받는 자에게 선물이 이 되지 않으려면 주는사람의 혜안과 담담한 마음이 필요하다. 선물에 어떤 목적을 덧붙이거나 앞세우기보다, 가장 직접적이고 순수한 교환인 눈을 마주치는 것에서부터 존중과 배려의 마음이 담긴 움직임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 고귀한 지출은 어떤가. 그 모범적 사례로 종종 <바베트의 만찬>을 들곤 한다. 일생에 단 한번, 요리사 바베트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감사의 마음으로 초대한 이들에게 최고의 만찬을 선사하고 감동과 삶의 의미를 회복케 한다. 필자 이자크 디네센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들이란 사람들에게 가장 최고의 것을 주어야 하는 사람이니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라고.” 바베트의 고귀한 지출로 초대받은 자들은 최상의 예술적 경험을 체험한다.

 

나도 한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바베트에 감화되어 고귀한 지출에 대해 상상한 적이 있다. 그러다 흉내를 내어보기도 했다. 상상의 차원에서는 아름다웠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우리의 만찬은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진 시간이라는 힘겨운 터널을 건너야 했고, 일상이라는 지루한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 속에서 내 상상 속의 만찬의 기적은 한두 번 실현이 되는 것 같다가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기적에 대한 향수와 회고라는 울타리에 갇히고 말았고, 일상 노동의 피로와 경제적 어려움을 곱씹으며 선물의 고귀한 의미는 퇴색되어갔다.

 

그렇게 일상에서 선물과 지출은 쉽게 오해되거나 허영에 빠지기 쉬워 보인다. 안하고 살수 없는 이상 지혜로운 주고받기를 고민해야 하는 지점인 것이다. 모퉁이극장에서는 관객문화교실 종강파티 때 선물 나눔을 한다. 10여주 간 함께 했던 우정의 시간들을 기념하고 내가 갖고 있는 소중한 것들 중 함께 수강했던 이들이라면 좋아할 만한 선물들을 하나씩 준비한다. 선물의 의미를 소개하고 각자 수업시간에 활약한 인상적인 모습들로 소개멘트를 작성한 쪽지를 뽑아서 해당되는 이에게 선물을 증여한다. 대부분 취미로 만들었던 엽서나 장식품, 아끼는 책이나 음반, 여행 때 들여온 기념품 등 주는 이들의 평소 일상의 풍경과 정성이 스며있는 물건들이다. 서로 부담 없이 기쁘게 나누며 선물을 통해 관객문화교실에서 맺은 인연과 활동들을 기억한다.

 

선물은 어쩌면 영화처럼 저마다의 인격과 마음, 감정들이 응결된 물질 같은 것 아닐까. 이것이 영화와의 만남처럼 선물 증여라는 사건을 통해 동료관객을 자신의 일상에서 특별한 의미로 만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또한 공동체적인 대면활동이 점점 힘들어지는 요즘 오해와 부담, 실망과 허영의 위험을 자초하더라도 누군가와의 소소한 영화 나눔과 마음 나눔이 부쩍 그리워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