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빨

  • 자료실
  • 글빨

[라떼는 말이야03] 넌 사실 아직 뱃속에 있어야 할 녀석이었어_박소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426회 작성일 20-08-21 11:47

본문

[라떼는 말이야03]

넌 사실 아직 뱃속에 있어야 할 녀석이었어

박소연

 

 

  나는 부끄럽지만, 스무 살 넘어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에 가서야 소를 처음 봤다. 사실 그때는 부끄러운 줄 몰랐는데, 선배들이 어떻게 그 나이되도록 소를 본 적 없느냐고 놀려대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날 본 그 소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찾은 거창마을에서도 정말 오랜만에 송아지가 태어난 날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목격했던 그 장면은 송아지 녀석이 어미 소의 배에서 탈출한 상태였는데, 온 몸에 양수와 오물 같은 것이 잔뜩 묻어있었고, 어미가 일일이 핥아주고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일어나고, 주저앉기를 반복하던 송아지가 뒤뚱뒤뚱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송아지를 보면서 이야, 저 녀석은 태어나서 바로 걷는구나! 인간은 적어도 일 년은 있어야 걷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 경이로운 순간에 보여준 송아지의 능력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도 출산이 임박해 배가 불러와 힘들어했을 때, 인생 선배인 친구들은 내게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는 말들을 해왔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공감한다. 아이를 낳은 직후, 실감했던 것이다. 세상에 나온 아기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여린 존재였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먹고 자고 싸는 것밖에…… 그렇게 13개월 즈음 지나자, 아이는 걸음마를 시작했고 19개월이 된 지금은 누구보다 빨리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쿵하고 잘 넘어진다.

  소도 9개월 간 임신을 하고, 인간도 10개월 간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데, 태어난 아기의 모습과 능력은 어쩜 이렇게도 다른 걸까?

 

*

 

  많은 연구들에게서 언급된 이야기기도 하지만, 사실 인간의 뇌는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크다. 그 크기가 절대적인 기준에서 크다기보다 신체의 크기를 감안했을 때, 상대적으로 크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인간의 뇌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6배나 크고, 우리와 염기서열 등이 가깝다고 여겨지는 침팬지나 고릴라보다도 3배가 크다. 그들이 혼자서 고통을 감내하고, 산부인과 의사나 조산사 없이 아기를 낳은 수 있는 것은 그 이유가 아닌가 싶다. 300~200만 년 전부터 인간이 출현해 두뇌가 팽창해갔다. 그리고 사족보행이 아닌 이족 직립보행을 하면서 다리와 다리 사이가 좁아지게 되고, 골반도 좁아지게 되었다.

  두뇌 크기로 봤을 때, 인간의 임신기간은 21개월 정도가 되어야 한다. 태어난 직후 비틀거리긴 해도 꼬물꼬물 걸어 다니는 송아지처럼 인간 또한 신경학적인 부분 등이 안정화된 상태로 태어나려면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2년인가 4백여 년 전의 산모미라가 발견되었다. 출산의 고통 속에서 죽은 양반집의 산모였는데, 미라의 태아는 머리가 질 입구까지 내려와 있었다.

  진화의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아이가 좁은 산도를 빠져나오지 못해 엄마와 함께 숨지거나 홀로 숨졌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아직 완전한 발달이 되지 않은 미성숙한 상태의 태아만이 산도를 빠져나와 다음으로 또 다음으로 후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 인간은 두뇌의 양적팽창과 골반의 변화 등에서도 다른 형태로의 진화를 선택한 것이다.

  태어난 아기가 첫 돌이 되는 시기까지를 영아기라고 하는데, 이 시기를 '1급 성장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뱃속의 태아처럼 아주 빠르게 발달되다가 그 이후에는 완만해진다. 그래서 태어나서 돌까지 가장 중요한 것이 애착관계 형성이다. 애착이 잘 형성되어 정서적인 안정이 된 아이일수록 신체의 양적 질적 성장 모두 무리가 없다.

 

*

 

  한류 열풍의 주역하면 다들 BTS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한류 열풍의 주역이 둘 더 있는데, 바로 호미와 포대기이다.

  여러분들 중에 'Podaegi'라는 단어를 검색을 해본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것이다. 많은 동영상이나 자료에서 포대기 매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포대기를 한 채로 뉴욕을 활보하는 사진을 보게 될 테니 말이다. 이는 Korean style baby carrier라고 해서 미국의 유명 온라인판매 사이트에서 실제로 거래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릴 적 사진에 엄마가 포대기를 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포대기를 사용하지 않고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친정엄마도 내게 몇 번이나 요즘은 왜 포대기를 사용하지 않느냐 물어보셨다. 왠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포대기하면 촌스럽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엄마의 허리부담을 줄여주는 유명 아기띠 같은 것들이 더 낫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

  90년대가 되면서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변화를 맞았다.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쫒아가던 서구사회에서 그들의 양육방식에 대한 지적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어린 아이를 별도의 공간에서 재우거나, 울어도 잘 달래주지 않고, 밤중에 울면 수유만 하고 따로 자는 등의 행동이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보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만 키워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아이와 한 침대에서 자거나 아이를 매달고 다니는 엄마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 애착이 아이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이 늘 우리를 매달고 민감하게 반응했던 어머니의 모습과 닮아있다.

  전문가들은 아기가 포대기에 있는 동안 엄마 혹은 주 보호자와 밀착되어서 따뜻한 온도와 신체접촉을 지속적으로 느끼며, 등 뒤에서 엄마가 하는 일을 보고 엄마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등을 보면서 아기는 많은 경험을 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학습된다고 한다.

 

*

 

  신랑과 너무도 닮은 20개월 딸은 아직도 놀다가 잠이 오면 안아달라고 뛰어온다. 사실 우리부부도 해 떨어진 시간이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 수면교육을 시도해본 적 있다. 수면책을 몇 권이나 사고 관련 블로그도 탐독했지만, 아이 우는 소리에 무던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우는 소리만 나면 뛰어 들어가 아이를 품에서 재운 다음에야 침대에 눕히곤 했다. 오늘도 엄마에게 매달려서 자는 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넌 아직 뱃속에 있어야하는데이렇게 세상에 빨리 나와 고생이 많구나…'

  만 두 살이 되면, 우리 모두 지금보단 좀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