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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다문(文)04] 먹고 사는 짓 : 삼겹살 편_박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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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403회 작성일 20-08-2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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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다문(文)04]

먹고 사는 짓 : 삼겹살 편

박창용

 

 

자타공인의 고기 굽기 고수로서, 삼겹살은 무척 까다로운 상대이다. 워낙 흔히 접할 수 있고 그 강렬한 기름의 풍미가 대충 구워 먹어도 맛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삼겹살을 굽는 고행을 하찮게 보는 사람이 많을 뿐. 잘못 구운 삼겹살은 수분과 기름을 잃어 말라비틀어지거나 덜 익어서 비릿하게 질겅거리게 마련이다. 조금 신경을 써서 먹어보면 맛없게 구운 삼겹살이란 무엇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삼겹살이 맛있는 이유는 비계가 많이 포함되었기 때문인데, 바로 이 점이 삼겹살을 굽기 어렵게 만든다. 불판을 비롯하여 뜨거운 조리 기구에 오른 구이용 삼겹살은 중대한 기로에서 한 가지 질문에 발이 묶인다. '기름을 얼마나 빼낼 것인가?' 사실 이 질문은 '살코기를 얼마나 익힐 것인가?'와 같은 뜻이다. 문제를 더욱 상세하게 해석하기 위해, 두 가지 경우가 가정해보자.

 

첫 번째, 질겅거리는 식감이 남지 않을 만큼 비계를 충분히 익히고 나니 살코기에서 수분이 다 빠져나가 퍽퍽해진 경우. 두 번째, 살코기가 육즙을 머금은 수준에서 가열을 멈추고 나니 비계가 덜 익어서 질겅거리는 경우. 두 경우 모두 비계와 살코기가 익는 속도, 그리고 비계와 살코기 각각 맛있는 익힘의 정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특히나 삼겹살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상황은 더욱 골치 아프다.

 

비계와 살코기 사이, 타협할 수 없는 익힘의 대립에서 정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삼겹살의 비계에서 질겅거리는 식감이 사라지는 즉시 가열을 멈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불 온도를 잘 조절하여(겉이 노릇노릇하게 익는 반응을 일으키는 동시에 겉만 심하게 익어버리지 않는 온도를 잘 찾아야 한다) 비계가 충분히 투명해지기를 기다리거나 직접 먹어보는 방법 등이 있겠다.

 

그러나 고수가 추천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앞선 방법은 두께가 1센터가 넘거나 대패처럼 얇은 삼겹살에는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두께의 삼겹살을 구울 때 최적의 방법은 바로 불판 위의 온도 차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접근하면 된다. 비계는 살코기보다 더 익어야 하므로, 불판에서 온도가 높은 부분에 비계를 두고, 비교적 낮은 부분에 살코기를 두는 것이다.

 

둥근 화구 위에 놓인 둥근 불판에서 굽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일단 가장 높은 부분인 가운데에 삼겹살 두세 줄을 얹어 겉이 노르스름하게 변할 때까지만 익힌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 이제 예쁘게 자른 삼겹살 조각을 비계 부분이 안쪽에 놓인 동심원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삼겹살 꽃이 따로 없다. 화구나 불판의 모양과 상관없이, 다음 사항만 기억하면 된다. 일단 겉을 최대한 빨리 노릇하게, 그 다음은 온도가 높은 쪽에 비계를(온도가 낮은 쪽에 살코기를).

 

, 나는 삼겹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장 먹을 때는 입은 즐겁지만, 다음 날 아주 높은 확률로 탈이 나서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 확률은 비계에서 기름이 적절하게빠져나가고 살코기가 육즙을 적절하게머금은 삼겹살을 먹게 되면 확연히 줄어든다. 아무튼 내가 혼을 바쳐 구운 고기를 당신들이 그저 맛있게 잡수시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