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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영화의 관객들04] 밝은 방_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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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344회 작성일 20-08-1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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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영화의 관객들04]

밝은 방

변혜경 

 

 

카메라 루시다, 관객의 자리

 

한동안 어휘에 매료되어 읊조렸던 적이 있다. 카메라 옵스큐라, 카메라 루시다그간 용어를 발견했던 시간들이 쌓였었나보다. <밝은 방>을 다시 들춰보면서 두 개의 용어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알고 싶어졌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라틴어로 어두운 방, 암실인데, 카메라(사진기)의 원어다. 한편 카메라 루시다는 사진이 발명되기 전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쓰여졌던 드로잉 보조 도구인데, 반사면을 설치하여 비치는 이미지를 눈에 전달하는 일종의 정교한 광학 장치였다고 한다. 카메라 루시다라는 말이 원래부터 밝은 방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노년의 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옵스큐라에 의해 찍히는 사진들을 사진의 전신인 그림을 그리는 도구, 카메라 루시다를 통해 밝은 방으로 꺼내 놓고 사진의 존재론을 펼쳤다. 아이러니하다.

 

내게 카메라 옵스큐라와 카메라 루시다, 거칠게 말해 어두운 방과 밝은 방의 대비는 사진을 만드는 작가와 사진을 향유하는 관객의 자리의 대비처럼 느껴진다. 암실은 작가가 사진을 만드는 공간에 대한 비유 같다. 옵스큐라는 작가에 의해 세상이 해부되는 곳, 분석되는 곳, 작가의 관점으로, 작가의 사진론으로 수렴되는 장소이다. 이렇게 작업이 끝나고 나면 결과물로 존재하는, 더 이상의 파고들 수 없는 명백함으로 확실하게 존재하는 사진, 그래서 더욱 신비하고 오묘한 깊이를 가진 사진이 나, 혹은 우리의 앞에 놓이게 된다. 마치 초상화의 주인공처럼. 카메라 루시다는 바로 이 사진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자리에 놓인 관객들에게 필요한 관객의 사진론이 발화하고 반사되고 교류하는 곳이 된다.

 

나의 눈으로 보지 않는 한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사진을 본다. 사진은 그것을 만드는작가조차 알지 못한 어떤 신비로운 삶의 진실들이 밝은 방을 통해 나의 눈에 신비롭게 반사되고 의도치 않은,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과 황홀감의 세계로 나를 이끈다. 내가 사진을 보는 바로 이곳, 카메라 루시다에서 사진의 존재, 사진의 아름다움은 태어난다. 명백하고 확실한 사진, 그래서 빈 중심이자 전적으로 무의 존재일 사진이라는 존재가 관객들의 자리에서 산란되어 찬란한 의미들로 눈부신 곳, 그곳이 밝은 방, 카메라 루시다이다.

 

나는 다만 몇몇 사진들, 즉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확신했던 그런 사진들을 내 탐구의 출발점으로 삼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하는 롤랑 바르트에게 그 몇몇 사진들은 사진의 존재론을 쓰기 위한 그만의 카메라 루시다였을 것이다. 우리가 모두 관객탑텐이라고, 저마다 나만의 영화목록을 품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그의 말년의 걸작 <밝은 방>은 우리들의 심미 체험을 돕고 사진을 통해 삶을 추억하고 새로운 의미들을 향유케 하는 카메라 루시다가 된다.

 

사진에 관한 논의와 체험이 카메라 루시다라는 장에서 이루어질 때, 영화와 사진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카메라 루시다는 관객들이 영화를 체험하는 곳이면서 영화를 다시 그리는’(쓰는), ‘복원하는 계기, 혹은 장소다. 영화 체험의 결과로 엮어가는 각자의 영화의 존재론과 역사들이 발화하고 찬란히 산란되는 곳인 것이다. 내가, 우리가 당연히 가져야 할 몫으로서 카메라 루시다, 우리의 자리는 이 밝은 방이고, 이것(이곳)을 만들고 지킬 권리가 주어져 있다. 나의 카메라 루시다는 어디에,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이 관객의 자리를 생각해보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