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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읽어 볼까?_구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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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461회 작성일 20-08-12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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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읽어 볼까?

 

구설희

 

 

어린이 전문서점에서 동화책(정확히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노동을 하고 있다. 맨처음엔 목이 아프고 숨이 차서 읽기 노동이 힘들었는데 1년차가 되자 부끄러웠던 진행도 점차 뻔뻔해지고 한 시간은 거뜬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흔히 동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어린이가 주로 읽는 어린이를 위한 문학. 하지만 동화는 어린이까지 볼 수 있는 문학이지 어린이만 보는 문학은 아니지 않나, 하고 1년차 노동자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읽기 노동이 친숙해진 만큼 말이다. 처음엔 그림책이나 동화가 유치하고 단순하다고 생각했는데 접할수록 다르게 보인다. 

 

단순하고 쉬운 이야기들 속에서 삶의 지혜나 철학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림책 원화전을 직장에서 진행하면서 옆에서 그림책 작가를 자주 접할 수 있었다. 한 작가는 작품을 하나 완성하기 위해 한 장면의 그림을 수 번을 반복했으며 작품을 위해 자료 조사하고 출간하기까지의 시간이 3년 정도 걸렸다고 했다.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니 그림책을 쉽게 봐서는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설렁설렁 넘기지 말고 찬찬히 보아야지 하고 다짐하게 된 건 그림책을 ‘찬찬히’ 들을 기회를 가진 덕분이었다. 

 

직장에서 그림책 워크숍을 갔다. 거기서 진행을 맡은 관장님은 존 버닝햄의 그림책 <검피아저씨의 뱃놀이>를 한장 한장 천천히 우리에게 읽어주었다. 2019년 작고한 존 버닝햄은 영국 태생으로 검피 아저씨 시리즈와 <지각대장 존> 등, 사려깊고 유쾌한 책을 펴냈다. 검피아저씨의 뱃놀이는 이전에 읽어봤었는데 사람과 동물들이 모여 어울리는 단순한 그림책, 내게는 감동 없는 그림책이었다. 그런데 그날 들어보니 그건 내가 ‘찬찬히’ 읽지 않아서였다. 

 

이 책은 검피아저씨가 뱃놀이를 가면서 시작된다. 노를 저어 강을 지나가고 있으면 아이들과 동물들이 자신들을 태워 달라고 하는데 검피아저씨는 흔쾌히 그들에게 타라고 하며 당부의 말을 한다. 작은 배라 사고가 날수 있으므로 가령 닭 같은 경우엔 “그러렴, 하지만 날개를 푸드덕거리면 안 된다”라고 하고 토끼에게는 “깡충깡충 뛰면 안 된다”라고 한다. 그래서 토끼, 염소, 꼬마들, 닭, 고양이 등이 타게 되는데 결국 닭은 파닥거리고 토끼는 깡충거리고 송아지는 쿵쿵거려 배는 뒤집히고 만다.

 

강에 빠지고 만 그들은 헤엄쳐 나와 검피아저씨의 집으로 초대되어 따뜻한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는다. 소박하고 즐거운 순간. 휴식시간이 끝난 뒤 검피아저씨는 꼬마들과 동물들을 배웅하며 말한다. “잘가. 다음에 또 배 타러 오렴”. 동물이 어떤 단점-혹은 유별난 점-을 지녔던지 괘념치 않고 배에 태워주는 검피아저씨. 그리고 강에서 그 난리가 났었어도 다시 또 보자는 그. 그날 워크숍에서는 그게 보였다. 따뜻하고 포용적인 어른의 모습. ‘네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하지 않아. 못생기든 느리든 공부를 못하든 남자든 여자든 어디서 태어났든, 장애를 가졌든, 성적지향 성정체성이 어떻든…’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긴장했던 마음이 놓아진다. 다시 아이가 되어 검피아저씨를 만난다면 나는 좀 더 다정한 어른이 되었을까. 그 뒤 진행자의 질문이 이어졌고 더 깊은 대화를 했다. 책을 통해서 포용하는 사람을 보며 자신의 어떤 점을 포용하고 싶은지도 얘기 나누었다.

 

이렇게 동화는 짧은 시간 안에 은유를 통해서 감동을 줄 수 있다. 또한 <검피아저씨의 뱃놀이>에서도 알 수 있듯 동화는 세상은 믿을 만하고 따뜻한 것이라는 긍정성을 심어주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해서 동화책이라고 마냥 (우리가 흔히 말하는)‘동화’같진 않다. 다만 좀 더 다가가기 쉽고 긍정적이고 포용적이고 따뜻하다. 그리고 세상이 동화 같지 않다는 건 어른은 커가며 슬프고 힘들며 혹독한 순간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는 말 같다. 그 속에서 동화는 어느 위치에 있을까. 이제 다 커버린 어른은 동화를 읽지 않는다. 유치해서, 동화책을 읽을 여유가 없거나 잃어버렸거나 누군가 빼앗았거나.

 

세상을 살기에도 벅차고 너무 바쁘다. 찬찬히 볼 시간이 없다. 동화를 읽는 것은 ‘마음’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검피아저씨에게서 느낀 바다 같은 마음을 만나는 시간. 잃어버렸던 마음에 대한 것을 살피는 시간. 그리고 그런 마음들을 자주 만나야 한다. 살아가며 ‘마음’을 만나야 할 때 동화(그림책)를 가지고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다. 이 마음은 애초에 만났으나 잊고 지냈던 것, 감추어져 있어서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림책 워크숍에서 책을 읽는 내내 다들 미소짓거나 감동스런 표정이었다. 검피아저씨가 동물들, 꼬마들과 간식을 먹을 때 그리고 그들을 배웅했을 때 지었던 표정도 그 시간에 지었던 우리의 표정과 같지 않았을까.  

 

 

 

구설희 : 어린이 전문서점에서 일하며 소수자와 동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에세이집 <여름이웃>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