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민예총은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부산의 예술인 단체입니다.

글빨

글빨

  • HOME
  • 글빨
  • 글빨

[소설 근본주의01] 죄와 벌_정진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7-30 17:49 조회33회 댓글0건

본문

[소설 근본주의01]

죄와 벌

정진리

 

 

법치국가에 사는 우리는 죗값의 처분을 법정에 위임함으로써 속죄의 본질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속죄란 용서와 다르게 남이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판결된 만큼 형을 살거나 벌금을 문다 해서 죗값을 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믿음이다. 법치주의가 덕치주의보다 우선하는 사회에 살다보면 마치 법정 판결이 전부인 양, 집행된 형 이상의 반성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듯하다. 나아가 일사부재리, 이중처벌금지 원칙과 함께 누구나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권리가 그러한 심리를 보호한다. 이미 사회적으로 반성의 서식이 정해져 있는 까닭에 기꺼이 죗값을 치르려는 태도를 발견하기가 무척 어려운 요즘이다.

 

을 논하기에 있어 동명의 소설이 단서가 될지 모르겠다. 감히 넘겨짚건대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에서 법의 심판과 자기 양심의 심판 중 어느 것이 더 진정한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스스로 믿는 이론에 따라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살해한 후 수사망을 교묘히 피해간다. 소설은 추리극처럼 이어지지만 그가 이야기 내내 맞서 싸운 것은 수사망이 아니라 오직 자기 마음이다. 그에게 있어 법의 심판은 그다지 무서운 결과가 못 되며, 중요한 것은 본인이 가진 사상의 정당성 유무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내재한 인간의 본성을 간과했다. 소설은 막바지까지 양심의 가책에 고통 받는 주인공의 심리를 파고든다. 나폴레옹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으레 그러하듯 희생을 발판 삼아, 사람을 해하면 안 된다는 사회 원칙과 도덕을 넘어서고 싶었지만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마음이 계속하여 스스로를 붙잡은 것이다. 끝내 그는 자수를 결심한다. 이러한 맥락으로 보자면 시베리아 유배라는 공식적인 형벌이 라스콜리니코프의 정신과 맞닿아 그를 완쾌, 부활시키는 에필로그의 대목은 가히 감동적이라 할 수 있다.

 

스탕달의 적과 흑도 일견 비슷한 줄거리다. 2의 나폴레옹을 꿈꾸는 영농후계자 쥘리앵 소렐은 사랑(결혼) 사기로 목표를 실현해나간다. 반반한 얼굴로 여성을 홀리는 데 자신 있던 그는 처음에는 레날 부인을 구워삶고, 다음에는 시장의 딸인 마틸다로 갈아탄다. 오늘날 용어로 환승이별을 한 셈인데, 이를 알아챈 레날 부인이 당연히 가만있지 않는다. 그녀가 진실을 폭로할까봐 두려워진 쥘리앵은 그녀를 따로 불러내 권총으로 부상을 입히기에 이르고, 모든 것이 탄로나 수감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레날 부인은 쥘리앵을 용서하고 선처를 바란다. 사랑의 힘이란! 쥘리앵은 그제야 진정한 사랑을, 신분 상승이 아니더라도 계급간 경계를 깨트릴 힘이 사랑에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죗값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게 된 건 그다음이다. 소설 말미에 쥘리앵은 레날 부인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죄를 받아들여 사형 당한다. 이야기 서두에 드러나는 쥘리앵의 각오를 떠올리자면 일견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이 가는 결말이다.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어떤가. 케이시 에플렉이 분연한 주인공 리는 어느 날 새벽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가는데, 술에 취한 나머지 벽난로에 안전망을 치는 것을 깜빡하고 만다. 그 대가로 아이들을 불길에 잃게 된 리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다.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실수에서 벌어진 일임을 인지한 경찰이 그를 일단 돌려보낸다. “깜빡하는 것이 범죄는 아니니까요.” 이 말에 리가 묻는다. “무슨 뜻이에요? 그럼 가도 돼요?” 조사가 끝나고 경찰이 자리에 일어서자 그도 덩달아 일어난다. 그러고는 경찰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빼앗아 자살을 기도한다. “그럼 가도 돼냐는 질문은 혐의를 벗었다는 안도의 물음이 아니라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질렀음에도 처벌받지 않는, 납득되지 않는 상황의 항변이었던 것이다.

 

속죄의 주체는 무엇보다 자기자신이어야 한다. 내면적이든 사회적이든 죗값에 걸맞은 벌에 복무하고자 하는 마음이 내게는 반성의 기준이다. 지은 죄에 한하여 합당한 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이 오늘날 시민사회에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들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제 죄를 응시하는 자에게 벌은 구원의 또 다른 이름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