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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장03] In the mirror_윤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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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7-23 09:48 조회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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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장03]

In the mirror

윤이삭

 

 

  등산객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졌다. 가쁜 숨을 고르고, 산 아래를 굽어보고, 물 한 모금을 마신 후에야 알아차렸다. 웬 거울이람. 거울은 입을 벌린 채로 묵묵부답이었다. 가파른 절벽에서 하품하는 고양이들의 존재만큼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등산객은 배낭에 담아 온 사료를 고양이들에게 챙겨주며 물었다. 너네는, 저게 뭔지 아니. 고양이들은 허겁지겁 사료를 입에 욱여넣기 바빴다.

 

  북문과 부채바위를 지나 깎아질 듯한 산 정상. 봉우리마다 단풍이 노랗게, 빨갛게 반짝였다. 티끌 없는 가을 하늘에 까마귀가 천천히 헤엄쳐 갔다. 산바람이 스치자 나무가 일제히 머리를 풀어헤치고 넘실거렸다. 고양이들이 작은 코를 벌름거리며 지나는 계절의 냄새를 맡았다. 이 모든 풍경을 담은 거울이 산 정상을 알리는 표석비에 붙어있었다. 거울은 표석비에 뚫린 구멍처럼 보이기도,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문처럼 보이기도 했다.

 

  거울은 한 달 동안 그곳에 있었다. 구청직원이 여러 차례 전화를 받았다. 그곳에 거울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몇 번은 거울이 있어 너무 편리하다는 전화였다. 산을 오르다 흐트러진 모습을 고칠 수 있었다고. 구청직원은 산 아래에 있는 절에 전화를 걸었다. 절에서 어떤 수양을 위해 설치해 놓은 것이냐 물었다. 책임을 절에 떠넘기려는 속셈이었다. 전화를 받은 스님은 대뜸 왜 이제야 알렸느냐며 노발대발했다.

 

  어린 스님 넷은 쉬지 않고 내달려 두 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과연, 그곳에 거울이 있었다. 거울은 노을 진 하늘을 담고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스님 넷이 각 모서리를 맡아 겨우 거울을 떼어냈다. 그 크기만큼 무게도 상당했다. 하늘을 떠받치듯 스님 넷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모았다. 거울을 들고선 하산 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흠집 하나 없이 가져오라는 주지 스님의 명이 있었다.

 

  해가 저물어 길은 흐릿하기만 했다. 산짐승들이 깨어나 제각기 울어댔다. 가장 어린 도영 스님은 나무 위, 풀숲, 어둑한 길 너머에서 끈질기게 따라붙는 시선을 느꼈다. 이를 드러낸 산짐승이 곧장 달려드는 모습이 그려졌다.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스님 넷이 우뚝 자리에서 멈춰 섰다. 찰나였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등줄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넷은 어떠한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걸음은 빨라져만 갔다.

 

  절에 다다랐을 때 스님 넷은 모두 기진맥진이었다. 도영 스님은 자꾸 손이 미끄러져 거울을 놓칠 뻔 했다. 승복이 온통 땀에 젖어 무거웠다. 거울을 든 채 퀭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있는 게 고작이었다. 기다리고 있던 주지 스님이 몸소 살피러 나섰다. 주지 스님은 지친 스님 넷을 뒤로 한 채, 거울을 보고는 전에 없이 얼굴을 구겼다.

 

  저녁 공양을 일찍 파하고 모든 스님들이 본당에 모였다. 주지 스님은 중요한 법회 때만 쓰는 비단 가사를 두르고 있었다. 주지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춰 염불이 밤이 깊어질 때까지 이어졌다. 거울을 들고 내려온 스님 넷이 꾸벅꾸벅 졸 때마다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린 스님들은 주지 스님이 어떻게 보지 않고도 졸음을 알아차리는지 의아했다.

 

  모든 스님들이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염불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주지 스님은 입고 있던 가사를 벗어 거울을 감쌌다. 이어 미리 준비해둔, 샘물에 잘 씻은 나무망치를 꺼내들어 내리치기 시작했다. 거울이 우지끈 깨지는 소리가 본당 안에서 몇 번 메아리쳤다. 주지 스님은 쉬지 않고 망치를 휘둘렀다. 주지 스님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후드득 쏟아졌다.

 

  마당에서 가사와 함께 거울을 불태우며 예불이 끝났다. 주지 스님은 남은 잔해를 잘 처리하라고 단단히 일렀다. 도영 스님은 지친 몸을 이끌고 재에 덮인 거울 조각을 쓸어 담았다. 쓰레받기에 담긴 잔해를 버리러 가는데 매서운 산바람이 들이닥쳤다. 도영은 흩날리는 먼지에 기침을 했다. 서둘러 잔해를 쓰레기통에 붓는데, 얼마간 양이 줄어든 듯 보였다.

 

  아침 예불을 마치고 절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산 중턱 농장에 있는 닭도 침묵했다. 전화벨이 울린 것은 해가 산 정상에서 살짝 비껴선 시간이었다. 도영 스님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전화를 받았다. 건너편에서 한참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이어지다가, 물었다.

 

  “산 정상에 거울. 절에서 갖다놓은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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