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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생의 독서일기03] 인간이여, 오, 인류여_김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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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7-16 14:12 조회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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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생의 독서일기]

인간이여, , 인류여

- 트루먼 커포티, 인 콜드 블러드를 읽고 

김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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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살인 등의 잔혹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요즘이다. 매체를 통해 보도가 되는 그런 사건들에 관한 소식, 거기에는 충격을 넘어 내면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다. 무자비하고 잔인한 행위, 드러난 사실과 말해지지 않은 동기, 행위자의 실루엣이나 장소의 강렬한 에너지 등과 같이, 모호함의 영역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동시에 선명하게 상상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오랫동안 내면을 뒤흔드는 것이다. 두렵지만 흥미로운, 서늘한 공포심으로 무장한 호기심이 고개를 든다. 결과적으로는, 매번 그러한 관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사그라들어 사유를 더 개진하거나 정리된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지만, 그럼에도 잔혹한 행위에 대한 생각은 순간순간 전율을 일으키는 주제로 다가온다. 인간 본성과 깊은 곳에 내재한 어두운 동력을 진지하게 탐구해보고 싶은 욕망이 일기도 하는 것이다.

짐작해 보건대, 195911, <뉴욕 타임스>에 실린 짤막한 기사를 읽은 뒤 트루먼 커포티(Truman Capote), 당시 미국에서 평단과 독자의 탄탄한 지지와 주목을 받고 있던 유능한 작가의 내면에서는, 그러한 욕망이 좀 더 강하게 무언가를 호소했을 것이다. 아마도 캔자스 주 홀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가족 네 명이 무참하게 살해되어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을 그 기사가 나온 이후, 커포티는 사건이 주는 어떤 힘에 매료되어 전말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장장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는 일가족 살인 사건의 정확한 경위와 피해자 가족을 비롯한 주변 인물과 사건에 직,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특히 두 범인, 리처드 유진 히콕과 페리 에드워드 스미스에 대해, 기록할 만한 사실과 사소하고 세밀한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 결과, 인 콜드 블러드 In cold blood가 세상으로 나온다.

 

작가 자신이 부여한 논픽션 소설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인 콜드 블러드는 소설이 가진 서사적 특징을 놀라우리만치 잘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 쓰인 모든 단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p.522)”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는 논픽션과 내러티브를 가진 서사 장르인 소설’, 커포티는 이 둘을 혼합해 새로운 장르적 도전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진실과 허구의 경계에 도전하는 것처럼. 이 융합은 흥미롭다. 어떤 면에서 작품은 소설로 읽히기도 하고 다른 면에서는 기록문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커포티가 포부를 가지고 내건 진실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 작품 또한 사실과 진실을 다루는 논픽션에 필연적으로 가해질 수밖에 없는 논의를 피해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논픽션의 진실성에 가해지는 의문은 가령 이런 것이다. 모든 것이 진실인 묘사가 가능한가, 진실을 기록함에 있어 작가 개인의 관점이나 의도를 내포한 상상이 개입되지 않은 쓰기가 가능한가. 커포티의 작품의 진실성에 관한 논란은 출간 이후부터 최근까지, 사실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 발견되었다는 근거를 내세워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논란을 안고 가더라도, 이 작품, 인 콜드 블러드가 놀랍고 비범한 작품임엔 틀림없다. 조용한 마을에 사는 선량하고 촉망받는 가족이 무참히 살해당한다. 마을에는 깊은 불신의 기운이 감돌고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수사관들이 배치된다. 이후, 거칠고 불안하고 종잡을 수 없어 보이는 두 사내의 행적과 체포, 재판까지. 모든 과정은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재현은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이고 어떤 대목은 전율이 감도는 힘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단락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적인 아우라는 작품의 예술적 깊이를 충만하게 한다.

 

냉혈’, ‘냉혈한이라고도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의 제목은, 잔인한 사건의 범인, 그중에서도 페리라고 불리는 키가 작고 인디언 혼혈 외모에 여리고 남다른 감수성과 정신세계를 지닌 것으로 묘사되는 인물과 관련이 있다. 사건과 두 범인에 관한 사실을 다루면서 커포티가 시종 객관을 잃지 않으려 애쓴 흔적을 작품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동시에 작가는 총을 들게 되는 이 페리라는 인물에 관심을 쏟으며 그의 내면에 접근하고자 많은 공을 들인다.

페리 에드워드 스미스는 어느 모로 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고아원으로 보내어져 학대를 당하기도 하고 떠돌이 생활을 전전하는 등의 경험. 커포티는 페리를 형성한 이야기에 깊이 매료된다. 옮긴이는 커포티가 페리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p.524)”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한다.

 

페리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자란 것 같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간 것 같았지.”(p.524)

 

물론, 작가가 작품 속에서 페리라는 인물에 대해 남다르게 동화되었다고 해서, 그 입장을 직접적으로 대변하거나 선처를 주장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인물의 삶과 행적의 궤도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어떤 상처받고 뒤틀린 영역이 그를 추방당한 동물(p.515)”의 삶을 선택하게 했는지 헤아려보는 작업의 중요성을 커포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작품에 개진된 이러한 작업을 통해 그는 인간 이해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이 책, 인 콜드 블러드의 표지 사진에는 커포티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손가락으로 비스듬히 기울인 머리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슬픔에 잠긴 듯, 생각에 골몰한 듯도 보이는 그의 표정은 인간 본성의 심연 속으로 깊이 침투하여 무언가를 캐내어 보려는 듯, 심오한 느낌을 주며 작품 기저에 깔린 정서와 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냉철한 지성을 잃지 않으며 동시에 서정적인 언어로 인간을 파헤치고자 했던 커포티의 작업의 결과물은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던지며 우리 인식의 깊은 곳을 건드린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예술이 추구해야 할 궁극의 목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트루먼 커포티, 인 콜드 블러드, 박현주 옮김, 시공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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