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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영화의 관객들02] 영화친구들을 찾습니다_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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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441회 작성일 20-07-02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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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영화의 관객들02]

영화친구들을 찾습니다

변혜경

 

 

얼마 전 관객문화교실을 시작했다. 올해로 6년째, 6기 수강생들이 모였다. 관객문화교실은 모퉁이극장에서 운영하는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로 한 해 동안 함께 할 영화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다. 관객들의 발걸음이 상영회 위주의 단발성 참여와 취향 충족으로 소급되는 것을 지양하고, 지속적인 어울림을 통해 영화향유의 폭을 넓히며 영화문화 생태계도 살필 줄 아는 능동적인 관객들로 연대하고자 이어온 강좌이다.

 

코로나 시대 30여명 단위로 모이는 정기 강좌를 꾸리는 게 가능할까, 꽤 많은 고민과 망설임이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지 주변의 사례들을 살피며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다. 여차하면 진행하다가 멈춰야 하는 상황도 감수해야 했다. 모집 공지를 낼 때도 얼마나 모일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고심 끝에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참여하는 분들과 협력하여 꾸려가기로 했다.

 

홍보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예년에 비해 더 많은 분들의 신청접수가 잇따랐다. 모집인원을 초과하여 조기 마감을 하기에 이르렀다. 40명 남짓한 분들이 정성을 담아 작성한 신청서를 보내왔다. 비대면 시대일지라도 대면소통의 필요를 누구나 느끼고 있음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사이 두 번의 수업을 진행했고 월요일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관객문화교실의 가장 큰 특징은 관객들이 만들어가는 교육 강좌라는 점이다. 강사 중심의 레슨형 프로그램, 강의식 수업은 그 결과의 여하와는 상관없이 전문가=강사’, ‘무지한=관객이라는 불평등한 이분법적 전제 안에 놓여 있다. 마치 무지한 관객들이 전문가의 가르침을 통해 지식수준이 향상되어 평등해질 것처럼 간주한다. 하지만 랑시에르가 <무지한 스승>에서 말했듯 평등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출발점이다. 그렇게 모든 지능이 평등하듯 모든 관객은 영화와 평등하게 만난다. 각자만의 고유한 영화감각과 삶의 레퍼런스 속에서 누구나 영화와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관객문화교실은 다소 거칠게 말하면 자유로운 관객, 해방된 관객들의 연대를 꿈꾼다. 영화사라는 거대비평담론, 평론가주의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지식의 경중에 위축되지 않고 관객들이 영화를 일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관객들이 영화를 매개로 자기서사를 말하고 함께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과정을 통해 영화 이해와 향유의 즐거움을 체득할 수 있도록 강좌를 구성한다. 모퉁이에서 자주 쓰는 관객들을 스크리닝(상영)한다라는 표현 역시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수업의 현장에 참여하는 모두가 강사와 수강생, 선배와 후배, 연장자와 연소자라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평등한 관계로 만나기를 희망한다. 우리 각자는 동등한 배움의 주체로서, 저마다 다양한 영화사를 품고 있는 서로를 위한 교재로서, 내 곁의 관객들을 소중히 여기며 어울린다. 이를 모퉁이극장에서는 영화친구라고 부른다.

 

사람을 판단하는 여러 기준이 있다. 손쉽게 소통되는 것들로 어디에 사는가, 어떤 부모를 두었나, 어떤 대학을 다니는가등이 있겠다. 하지만 어떤 친구와 함께 하는가역시 사람됨은 물론 삶의 행보에 결정적 영향력을 끼치기도 한다. 올해로 50주기를 맞는 고 전태일 열사는 생전에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나의 경우 십여 년간 영화세미나를 함께 해온 친구들 덕분에 영화에 대한 호기심과 의욕을 이어가며 모퉁이극장에 닻을 내리는 데 이르렀다.

 

관객문화교실에는 친구를 향한 목마름으로 매년 관객들이 모인다. 이렇게 미지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 사이에서 모퉁이극장도 영화친구들을 찾고 있다. 일상을 영화처럼 멋지게 살아내고, 곁에 있는 이들에게 좋은 영화처럼 삶의 영감과 힘을 주는 관객,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 지속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낼 줄 아는 관객, 영화 같은 시네마틱 피플(cinematic people)이다. 그래서 올해도 종강파티엔 내가 찾는 관객을 부를 것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장소에서 관객운동을 함께 이어갈 영화친구들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이런 영화친구를 찾습니다

 

좋은 영화 찾아보고 영화세상 가꿔가는,

친구 손을 마주잡고 영화사랑 고백하는.

귀갓길이 쓸쓸해도 모퉁이를 들러가는.

 

가리어진 나의 길을 터주는,

힘이 되어주는 관객

 

- 종강파티 관객합창, ‘내가 찾는 관객’, ‘가리워진 길’ 중에서

 

Imagine all the cinema, Imagine all the cinematic peo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