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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 넘기는 소리01] 철학이란 무엇인가?_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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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562회 작성일 20-06-1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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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 넘기는 소리01]

철학이란 무엇인가?

지하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수많은 텍스트를 먹어치워도 철학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은 만나본 적 없다. 당최 모르겠다! 내가 철학을 공부하며 느낀 것은 의심하고 질문하는 태도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의심하고 질문하는가? , , 이것과 저것, 즉 세계에 대한 의심이다.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자. 혹자는 이를 유식한 말로 철학함(philosophieren)’이라 하더라.

  이 글은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다. 철학이 아닌 철학사哲學史를 톺아보며 세계를 대하는 여러 태도를 맛볼 것이다. 철학사를 읽는다는 것은 질문의 계보를 따라가는 일이다. 고대인은 무엇에 신비를 느끼고 궁금함을 느꼈으며, 현대인은 고대인의 반석 위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이것이 철학사를 읽는 이유다. 이를 통해 우리가 철학 그 자체를 손에 쥐지는 못할지라도, 운이 좋다면, ‘철학함을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동양이 아니라 서양인가? 동양에서는 성현의 말씀에 토 달지 않는다. (대충 그런 경향성이 짙다는 거다.) 반면 서양의 철학은 살부(殺父)의 역사다. 과거가 되어버린 성현을 죽이고 오늘날의 왕좌를 차지하려는 전쟁과도 같다. 지성의 살육전을 바라보는 재미, 단지 그 이유다. 게임을 시작해보자.

 

 

모든 것은 변한다.”-헤라클레이토스( B.C. 540(?) ~ B.C. 480(?) )

 

  강은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옳은 말이다. 세상 어느 구석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이 변화라는 것이 중구난방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물이 불이 된다든가, 자고 일어났더니 잘생겼던 내가 못생겨진다든지 말이다.

  변화에는 분명 규칙성이 존재한다. 위에 있는 것은 아래로 떨어지고, 뜨거웠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차가워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런 규칙성이 바로 로고스(logos)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로고스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면 이를 동양철학의 이()로 대체해도 좋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바라보는 세계는 변화와 운동으로 가득하지만 그것들은 척도를 따른다. 바로 이 척도가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며 유일한 로고스다. 그는 로고스의 영원한 섭리와 법칙에 따라 세상만물이 대립·투쟁·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근원에서 태어나고 다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의 척도가 되는 로고스를 염두에 두고 그는 "만물은 하나다"라고까지 말한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파르메니데스( B.C. 515(?) ~ B.C. 445(?) )

 

  파르메니데스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맞는 말을 전제로 말장난을 치기 때문이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참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변화도 겪을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있는 것이 만약 어떤 변화를 겪을 수 있다면, 그것에게 있었던 것은 없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없는 것이 없다면 세상에는 있는 것 하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있는 것이 여러 개 있으려면 있는 것 사이에 허공(없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은 말 그대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에는 하나의 있는 것, 일자(一者)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이 이와 다른 것은 우리가 감각에 속고 있기 때문이다.(이를 납득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저 파르메니데스 개인의 주장일 뿐이다.)

  파르메니데스가 언급한 일자(一者)’는 서양철학사에 있어 대단한 중요성을 가진다. 일자의 문제는 최초에 그리스 이전의 자연철학에서 최초의 철학자들이 만물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파르메니데스에게서 그것이 존재로 최초로 언명되었다. 만물의 근원을 물이나 불, 흙이나 바람과 같은 자연물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존재그 자체에서 찾은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의 탁월함은 있는 것있음의 차이를 명백히 구별했다는 사실에 있다. 고대 철학사 최초로 존재(있음)를 존재자(있는 것)로 환원하지 않고 존재 그 자체로 바라봤던 인물이 파르메니데스인 것이다. 존재에 대한 물음은 현대에 와서도 해결되지 않는 궁극적인 질문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vs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당신은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중 누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둘 다 틀린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당신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가 더 중요하다. 한번쯤 색다른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 그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자세, 오늘 우리는 2,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두 고대인으로부터 철학함을 배웠다. , 여기서 질문 하나 드리겠다. 지금 당신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