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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병장이 전역하는 날_방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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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6-15 15:24 조회1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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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6.16

임 병장이 전역하는 날

방정현

 

 

임 병장이 전역하는 날이었다. 그는 행정병이었고, 이등병부터 일병이 끝날 때까지 수도통합병원에서 입원해있던 사람이었다. 상병으로 부대에 복귀한 그는 후임을 곧잘 갈궜는데 보통 쓸데없는 이유거나 혹은 그조차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사실 선임이 후임 갈구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느냐만, 그만큼은 달랐다. 힘든 시절을 부대에서 보내지 않았기에, 그와 우리 사이엔 전우애가 없었다.

며칠 전부터 나의 두 달 선임 이 상병(당시 나도 상병이었으나, 그는 무려 상병 말 호봉으로 부대 내 실세였다)이 임 병장의 전역빵에 참가할 사람을 모았다. 인원은 열 명 남짓했고 이등병부터 상병까지 계급은 다양했다. 모인 이들은 임 병장에게 시달렸거나, ·이등병 생활을 병원에서 편히 보냈음에도 후임에게 행패부리는 것이 아니꼬웠다거나, 에어콘과 히터 아래서 편하게 군 생활한 행정병이었다는 게 재수 없다거나, 사실 별 이유는 없이 그냥 때리고 싶었거나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네 번째로 사실 그에게 그리 큰 악감정을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유행에 목맨 사춘기 청소년처럼 그를 때리고 싶었다. 이유는 때리면서 생각하면 되었고, 사실 이유가 필요 없기도 했다.

임 병장은 홀로 대대본부에 전역신고를 하러 갔다. 그에겐 동기도 없었고, 함께 나가기 위해 휴가라도 쓴 후임 한 명 없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상황이었겠지만, 우리는 그의 비참한 최후를 일종의 인과응보라고 여겼다. 전역하는 순간. 그것은 군인에겐 일종의 성적표였다. 군 생활을 잘한 사람은 헹가래와 격려, 중대원의 사열을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홀로 허망이 떠나거나, 원한을 산 사람에게 딱 그만큼 맞고 전역을 맞이했다. 현역에게는 팍팍한 군 생활을 어떻게든 견디게 해주는 희망의 시간이며 군 생활의 응어리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 상병을 위시한 우리는 대대 막사 근처의 풀숲에서 임 병장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검문소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오는 그를 보자, 우리는 삽시간에 뛰쳐나가 그를 둘러싸고 비죽 웃어댔다. 임 병장은 자신을 배웅해주러 우리가 왔다고 믿고 멋쩍게 웃어 보였으나, 무리에서 막내 둘이 그를 붙잡자 임 병장의 얼굴이 굳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 어차피 군 생활이잖아 함께하지 못한 건 미안하지만 나도 살아야지 너희도 똑같이 할 거잖아 그리고 내가 너희들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앞에선 모질게 굴어도 뒤에선 행보관님 중대장님한테 헛소리 뻥뻥 쳐가면서 너희 연등 부식 A급 피복 같은 것들 챙겨준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라고 임 병장이 지껄여댔는데, 씨알도 먹히는 것 같지 않자 타깃을 이 상병으로 바꾸었다.

너도 후임한테 잘해줘 내가 너한테 못 해준 게 뭔지는 잘 모르겠고 우리 사이에 이러는 게 말도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이해할게 그러니까 앞으로라도 후임한테 잘해줘 내 꼴 나지 말고

닥치고, 좀 맞자.

이 상병이 윽박지르자 임 병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러면 옷이랑 전투모라도 위병소에 맡기자. 에이급이라서 눌리면 안 되거든.

그러고는 위병소 앞에서 옷을 한 꺼풀씩 벗기 시작했다. 전투모부터 야전상의, 전투복까지 벗으니 갈색 런닝과 뽀얀 살갗이 드러났다. 부대 특성상 런닝자국 혹은 반팔자국이 나기 마련인데 그의 뽀얀 살결은 너무나 낯설어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

?

아니 신발 끈 좀 묶자고, 헐렁하네.

임 병장은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척하더니 몸을 돌려 냅다 뛰기 시작했다. 임 병장의 추태에 정신이 빠져있던 막내들은 그를 붙잡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옷가지는 이미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를 붙잡으려 런닝을 잡아당겼으나, 낡은 군용 런닝은 너무나 쉽게 찢어졌다. 마치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처럼 임병장은 부대 바깥으로 뛰쳐나가 소리쳤다.

병신새끼들아 뺑이 쳐라. 시팔새끼들 난 전역이다. 좆이나 까라.”

그리고는 후다닥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갔다. 멀리 버스정류장에서 다 떨어진 런닝을 버리고 옷을 주섬주섬 입는 그에게 우리는 손을 흔들며 잘 가라 씹새끼야라고 인사해주었다. 그의 처량한 모습이 안쓰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군 생활 좀 열심히 했으면 이런 일은 안 생겼을 텐데.

 

임 병장이 버스를 타고 떠나자 우리는 피엑스로 향했다. 나는 넌지시 이 상병에게 임 병장에 대한 불만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별 이유 없는데?

임 병장을 붙잡지 못한 막내 둘은 엎드려뻗쳤다. 임 병장이 전역하는 날 우리는 피엑스 옆 플라스틱 테이블에서 간짬뽕과 공화춘을 먹으며 전우애를 길렀다.

 

 

 

- 예비군역 방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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