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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눈 감은 에코르셰1_정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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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9-26 10:08 조회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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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눈 감은 에코르셰

정​재운

 

허공으로 붕 떠오르던 몸뚱이가 안전벨트의 결박을 확인하고 다시 등받이로 내동댕이쳐지던 그 순간에도, 정의 의식은 자박자박 걸어 들어가던 수마睡魔의 그늘을 벗어날 줄 몰랐다. 어떻게 왔나 몰라, 애먼 고개를 저어도 집 나간 현실감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획회의가 열리는 센터 앞, 그는 우뚝 섰다. 지난 십삼 회차를 거듭하는 동안, 첫 회의를 제하곤 한 번도 바꾼 적 없는 호실이 왜 떠오르지 않는가 말이다. 혼선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 초간, ‘피잉하는 소리가 났다. 그 자리에 더 있었다면, 하늘이 무너지고 지면이 올라와 그를 바닥에 붙여버릴지도 몰랐다. 겨우 그런 순간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김 감독을 만난 탓이었다. “정 선생, 기도해?”

회의를 앞두고, 정은 다과코너로 가 커피를 탔다. 방울방울 모은 콜드브루를 옆에 두고도 그는 아낌없이 설탕을 품은 믹스를 선택했다. 센터장인 최가 조금 과장을 보태 아연한 얼굴로 왜냐고 묻자, 정은 더듬거리면 대답했다. “……인색하지가 않아서요.” 최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아, 하는 소리를 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의 말소리는 정의 귓가로부터 아득하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얼결에 브레이크를 콱 지르밟은 오른발이 아니었다면정은 버르적대며 깨어났다. ‘브레이크가 아니라 액셀이었다면끔뻑끔뻑 눈을 뜬 그는 그것도 모자라 제 몸을 더듬더듬 확인하기 시작했다. “정 선생, 지금 연기해?” 큐레이터 신이 신을 내며 그가 버둥거리던 모습을 따라했다.

회의가 끝나고 화가 박이 정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그는 달의 호면 같은 눈을 만들어 보였다. 그 표정이 말하는 바를 모를 리 없는 정은 차 때문에도 안 되지만, 지금 상태론 한 잔도 치명적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원래도 박은 단번에 물러서는 법이 없고 좀체 엉겨오는 타입이었지만, 이 날만은 유난했다. 자기만 마시겠으니, 맞은편에 앉아있기만 하라는 억지는 대체 무슨 창의적인 발상이란 말인가! 정도 평소 같으면 이렇게까지 퉁기진 않았다. “아까 신큐가 나 흉내 내는 거 보고도 지금 한 잔 하자는 말이 나와요?” 정은 박작과의 이십 년 가까운 나이차를 망각하고, 불쑥 대거리가 삐져나왔다. “나 참 쪽팔려서금세 후회스런 마음에 사로잡힌 정이 주머니를 더듬었다. 박이 제 담배를 정의 입에 물려주었다. “이 판에서 뭐 쪽도 팔고 하는 거지, 좆 팔지 않는 게 어디야.”

두 사람은 구도심의 낡은 통닭집으로 들어갔다. 기름이 끓기까지 좀 기다려야한다는 주인의 말에 그러마하고 구석 자리에 앉은 박은 맥주에 소주를 타서 목을 축였다. 박은 정말이지 정을 맞은편에 앉히는 데까지가 그 목적인 사람인양 정을 의식 않고 꾸덕꾸덕한 제 몸뚱어리에 술을 붓기 시작했다. 가만 보고 있자니, 먹방이란 게 따로 없다 싶다. “술이 그리 좋소?” 묻는 말에 박은 어디 모르는 맛도 아닐 텐데?”라고 돌려준다. 아는 맛이라 더 무서운 거라지만, 정은 더없이 까라지는 몸을 생각하면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통 못 잤지?” 그러곤 뭐라 더 묻지도 않았는데, 정은 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해 떨어지곤 잠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아마 정은 물음 앞에 장식처럼 붙어있던 박의 얘기에 마음이 흔들렸으리라. “벌거벗겨져 있으면 손 쉽게 상처입고 감염이 돼.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으니까. , 통 못 잤지?” 박은 다 헤져서 반질반질한 백팩에서 스프링노트와 끝이 뭉툭한 수성사인펜을 꺼냈다. 정은 박의 작업실을 수차례나 간 적 있지만, 그가 작업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완성된 결과물로서만 만날 수 있었던 박의 작품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그와 겹쳐지지 않았다. 정은 몇 해 전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기사단장을 떠올렸다. 그림 속에 존재하지만, 그림 밖 세계로 자주 나와 현실의 존재를 환상 속으로 이끄는 그것. “형이 그린 게 아니지? 기사단장이 튀어나와서 그린 거지?”하고 물어도 박은 알코올에 녹아든 탁한 눈동자를 비비며 대꾸했다. “그럼 얼마나 좋니?” 박은 아주 잰 손놀림이랄 순 없지만, 그가 움직이는 대로 가늘고 굵은 선이 쉴 새 없이 그어졌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정은 박 앞의 빈 잔을 끌어와 소주와 맥주를 채웠다. 그리곤 트림이 나도록 한껏 식도를 열어 술을 부었다. “벌써 몇 주째, 해 떨어지곤 잠 들어본 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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