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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네 추억의 음식은 뭐니?2_정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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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8-22 20:03 조회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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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를 섞어서 도우를 만들었을 거야. 아버지 제사상 차릴 때나 꺼내던 넙데데한 전기그릴에 기름 두르고 한 판, 두 판 굽기 시작했는데할머니에겐 바로 어제의 일인 듯 웃느라 터져 나오는 기침에 쇠잔해지는 기력을 붙들고 이야기를 하고, 하고, 또 했다. 어머니 당신도 그렇게 열댓 판이나 구워질 줄 어디 알았겠는가. 비싼 치즈는 진작 동나버렸다. 그녀는 그때부터 냉장고 속의 이 재료, 저 재료를 들입다 올리기 시작했다. 팽이, 가지, 애호박은 양반이었지, 하고 말하던 할머니의 눈가에 괸 눈물은 방심한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맨들맨들한 손등 거죽으로 눈물을 훔치던 할머니는 미친년이 된장을 또 처발라가지고, 하고 중얼거리며 또다시 왈칵 눈물과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하와이안 피자라고 파인애플을 올린 것도 있는데,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된장은 심하다, 누구나 심한 세월을 견디고 버티는 동안은 광기라는 게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뒤져도 우리 피자에는 뭘 더 올릴 게 없네. 파프리카나

  전자레인지가 납작한 타이머 소리를 내며 동작을 멈췄다. 호민은 가위를 손가락에 끼웠다. 그의 추억 속엔 흐리마리한 미지의 영역이지만, 아마도 그랬을 것이 분명한 어미처럼 그는 가위로 피자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는 가장 완벽하게 이등변삼각형에 가까운 피자조각을 담아 수연의 앞 접시에 담았다. 수연의 허기진 배는 어찌 막을 도리도 없이 천천히 턱을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눈을 꽉 감았다. 베드에 누워있을 때, 그녀가 먹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그것이 무엇이든, 그녀가 겪은 고통이 무엇이었든 그때 호민이 수연을 위해 뭐라도 사다줬다면 그녀에게 추억의 음식은 바로 그것이 되었을 테다. 생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녀를 채워주었던 그것을 어찌 잊겠는가. 그러나 삶은 더 낮은 자리를 파고 우리를 기다리곤 한다. 그 무시무시한 날 앞에 우리가 대비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기껏해야 우리가 쌓아올릴 수 있는 건 오늘처럼 단박에 무너지기 쉬운 너무나 범상한 방법, 방법들 뿐생각이 그에 닿으니, 수연의 몸은 더 없이 까라진다. 눈을 뜨자, 애처럼 채근하고 있는 호민이 눈에 들어온다. 못 이기듯 한 입 베어물자, 그녀의 엄지가 뚫어낸 파프리카의 구멍이 혀로 만져진다.

  ‘인간아, 물러진 부분은 잘라내야지소리치고 싶지만, 한 입 가득 채우고 있는 피자 때문에 말이 나오질 않는다. 천장을 향해 고개를 쳐든 수연은 귓바퀴 쪽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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