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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네 추억의 음식은 뭐니?1_정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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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8-22 19:58 조회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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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추억의 음식은 뭐니?

    


정재운  

  

 

 

  수연의 그 같은 질문에, 까무룩 꺼져있던 학생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고개가 두셋쯤 더 올라왔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절반쯤 읽고 있던 CASE 7, ‘50A를 잠시 내려놓았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소곤대기만 하지, 누구 하나 손을 들 줄도 수연에게 대답을 돌려줄 줄도 몰랐다.

  “아니, 뭘 그렇게 어려운 걸 물었다고 그래?” 수연의 남편 호민이 무심히 대꾸했다. 거기까지만 하지, 꼭 그렇게 요즘 아이들소리까지 갖다 붙여야했는지, 수연은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는 차마 발화되지 못한 제 감정의 잔여를 애먼 학생들에게 붓고 있는 게다. 지금이야 서로 맞춰 사는 방법을 어느 정도 익혔다지만, 신혼 때만 해도 둘은 투덕거리는 게 일상이었다. 불과 한두 해 전만해도 수연은 참지 못하고 대거리를 했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호민의 냉소가 아이들이 아닌 그녀에게 향했겠지. 좋게 말해 맞춰가는 법이 어쩌고 하지만, 실은 둘 모두 싸움을 피하는 기술만 낡은 러닝셔츠마냥 비죽 늘어난 건지 모르겠다.

  “그럼 자기한텐 그게 뭐야?” 수연이 묻자, 호민이 궁리하기 시작한다. 언제까지 꼬장꼬장 짜증을 낼 것 같더니, 참 놀라운 단순함이다, 수연은 생각했다. 물론 세상 남자들이 다 저런 건지는 알 수 없다. 호민에게도 그렇듯, 수연에게도 오직 한 명의 이성하고만 평생 사랑하며 살겠다는 지키기 어려운 서약을 이미 해버렸으니 말이다. “단박에 안 튀어나오는 건 요즘 아이들하고 똑같네?”

  “평소 외근이 잦은 A씨는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거나 국밥을 선호하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최근 그는 가슴 아래가 뻐근한 불편감을 호소하며 미뤄왔던 건강검진에 응했다학생들이 일제히 소리를 냈다. 한창 졸던 녀석들까지 합세해서 하울링하는 모습이 수연의 눈에는 크고 사나운 늑대라기보다 눈만 겨우 끔뻑이는 새끼 강아지처럼 보였다. 그래봐야 저보다 겨우 열댓 살 어린 시커멓게 머리 굵은 이십대 청년들이 아닌가. “, 조용. 다음이 중요하죠. 검진 결과가 어떻게 나왔다고 했어요? 담낭에 결석이 생겼고, 지방간 소견도 보인다고 했죠?” 아이들의 하울링은 좀처럼 그칠 줄을 모른다. 그러다 한 녀석이 비죽 나온 입으로 말했다. “우리한텐 그런 거 없어요.” 아이들의 소리가 잦아들고, 수연의 눈이 A씨에게 떨어져 나와 발화의 진원지를 좇아 조금 커졌을 때, 녀석이 뾰족하게 덧붙였다. “교수님 때는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는 거의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추억의 음식하면 냉동식품, 편의점 도시락밖에 없어요.”

  “……그러는 거 있지.” 해도 호민은 지상 최대의 과제를 떠맡은 양, 본인의 추억의 음식만 맹렬히 찾고 있었다. 또 아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다고 뭐라고 할까 싶다가 한 고비 넘기자, 속으로 되뇄다. 수연은 냉장실과 냉동실을 차례로 일별했다. 냉장실은 휑했고, 성에에 잡아먹힌 오래된 피자박스 귀퉁이가 보이는 냉동실 풍경은 그녀를 좀 더 참혹한 기분으로 끌고 갔다. 아니, 저만 일하느냐 말이다, 오늘처럼 나보다 먼저 들어와 있으면 밥이라도 안쳐놓던가그래서 뭐라고 했어?”

  “수술은 개복이 아닌 복강경으로 갑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얘기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어떻겠어요? 무섭죠?” 수연은 추억의 음식을 가지지 못한 녀석에게 별다른 얘길 돌려주지 못했다. 수술을 앞둔 A씨는 자정부터 물도 먹을 수 없는 금식에 돌입할 것이다. 금식 케이스가 나와서 그렇게 물은 거였어?” 호민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교습법 좀 개발하라느니 지껄이기 시작한다. 수연은 아까부터 의미 없이 냉장고 문짝만 여닫는 중이다. 뭐 하나 성한 게 있어야지

  “요즘 애들은 말이야, 자기처럼 가르쳐선 안 돼. 피피티 자료만 해도 그래. 글자를 많이 넣지 말고거기까지 말하던 호민의 입이 그대로 굳은 채 다물 줄 모른다. 수연의 새된 소리가 재차 날아든다. “뭐 하나 성한 데가 없다고!” 짓무르기 시작한 파프리카엔 수연의 엄지가 움푹 들어가 박혔다. “튼튼이 떨어지고 누워 있을 때, 커튼 너머에서 나던 유축하는 소리가 얼마나맞은편 베드에서 나던 소리들이 나를 얼마나 떨어뜨리던지여느 날엔 그럭저럭 모든 걸 넘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맞춰가는 법도, 싸움을 피하는 방법도 모두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야 마는 날이 바로 오늘인가보다.

  수연은 방으로 들어갔다. 엄지를 먹었던 파프리카가 쓰레기통에 들어갔는지, 식탁 위에 뒀는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있던 냉장고에 다시 던졌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아 이마를 싸쥐었다. 수술 이후, 그녀는 웬만한 기초화장도 찍어 바르지 않았다. 호민은 입버릇처럼 화장도 좀 하고, 강단에 서는 사람이하고 말했지만, 그이가 그렇게 말하면 더욱 하기가 싫어지는 것이 그녀의 마음이었다. 아주 죄인이 따로 없었다. 양가 어른, 특히 제 어미에게 연신 허리를 굽혀 죄송하다, 면목 없다던 그는 정작 제 여자의 머리맡엔 뭣 하나 사들고 올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밀쳐내도 자꾸만 들러붙는 사념과 시름하면서 한 십 분쯤 흘려보냈나, 밖에서 나는 달그락달그락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수연은 축 늘어지려는 몸을 일으켜 다시 부엌으로 발을 옮겼다.

  “아까 물었던 거 말야. 놀랍게도 나도 추억의 음식이 뭔지 모르겠더라

  “지금 뭐해.”

  “나도 그랬어. 엄연히 맞벌이는 아니지. 엄마 혼자 벌었으니까. 배고프지? 앉아.”

  “지금 뭐하냐고.”

  “추억의 음식이 뭔지 물었잖아. 내 대답은 일단 미루고, 할머니의 대답이 생각나서호민은 냉동피자를 식탁에 올려놓고 궁둥이만 치켜 올린 채 냉장고를 뒤적이고 있었다. 좀 전까지 수연이 그랬던 대로.

  “너도 알겠지만, 치매환자한텐 드물게 온전한 정신이 돌아올 때가 있어. 처음엔 그것도 환영 같은 거라고 여겼지 뭐야.” 호민의 외할머니는 남편을 잃은 딸네 집에 들어와 이십여 년을, 마지막 서너 달은 요양병원에서 살았다. 생의 불빛이 스러지던 그 서너 달을 호민은 짧지만 영원처럼 오랜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배냇저고리 입은 호민을 스무 살 청년으로 키워낸 할머니는 깊어가는 병증의 와중에도 그가 기저귀를 갈아입힐 때마다 몹시도 부끄러워했다. 할머니가 피자 얘길 꺼낸 것은 임종을 며칠 앞둔 어느 오후였다. 호민은 유언이랄 것도 없이 가신 할머니의 마지막 음성이었던 그 말을 좀 더 귀 기울여 들을 걸, 하고 살면서 종종 후회했다. 아버지를 여읜 지 한 해나 두 해쯤 흐른 어느 날, 어머니는 피자를 만들었다. 너무도 어렸던 그에겐 기억조차 없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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