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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정원(庭園)에선 북항대교가 보인다_김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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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6-07 16:11 조회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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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6.07

그 남자의 정원(庭園)에선 북항대교가 보인다 

김기영

 

 

장미꽃 송이가,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소고(小鼓)만 하다. 그 탐스러운 송이를 받치고 있는 줄기의 힘이 대단하다. 큰 꽃 장미나무는 아우라가 넘치고 몹시 장엄하다. 그 옆으로 나란히 덩굴장미가 촘촘하게 꽃송이를 달고 있다. 그쪽도 꽃송이가 영 작지는 않은데 워낙 압도적인 것 옆에 있으니 그냥 귀여운 것들이 되고 만다. 옆 친구를 잘 만날 일이다. 그 아이들은 물량으로 승부를 하는데 작은 것들이 서로 얼굴을 드러내려고 밀고 댕기면서 소란을 떠는 것 같다. 햇빛 아래 올망졸망 해찰하듯 나부대는 덩굴장미 아래에는 내 무릎 높이로 자란 샛노란 달맞이꽃이 일렬로 사열을 한다. 원래 토종 달맞이꽃은 길가나 들판에 설렁설렁 자라는데 꽃대가 가늘고 긴데다가 연노란 꽃잎조차 주로 밤에 피니 가녀린 여인의 이미지로 등치될 때가 많다. 그에 비해 원예용 달맞이꽃은 작고 통통해서 분위기가 영 다르다. 노랑 병아리가 떼로 모여들어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재재대는 거 같다.

 

길에 면해있는 작은 이 정원을 가꾸는 이는 이웃에 사는 나이든 남자다. 그는 체구가 작고 조용하다. 이사를 온 지 한참이 지났는데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은 없다. 상상하건데 목소리도 작을 것 같다. 간혹 주위에 할매나 중년 여성들이 얼쩡거리고 무어라 말도 하는 것 같은데 정작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괜히 궁금증이 생겨 뭐라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밤늦은 시간에 간혹 의자를 내놓고 앉아서 물끄러미 정원을 바라보는 그를 보게 된다. 꽤 오랜 시간을 앉아있다. 별 움직임 없이. 나무들과 얘기라도 나누는 것 같다. 그런 때는 그냥 발소리도 조용하게 지나쳐온다.

 

봄 오는 무렵에는 동백나무 10여주와 배롱나무 몇 주를 삽목해 놓은 걸 보았다.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제대로 뿌리를 내렸나 궁금해서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곤 했는데 몇 주를 빼고는 시들시들 죽어버렸다. 그 와중에 뿌리를 내린 동백은 통통한 잎에 햇빛을 잔뜩 받고 있다. 땅에 떨어진 씨앗에서 자연 발화된 어린 동백을 보면 몇 날을 지나야 튼실한 줄기를 가질 것인가 세월을 헤아리게 되는데, 나도 삽목에 도전해봐야겠다. 요즘은 장미나무가 지지대에 묶여 새로 삽목되어 있다. 나무 사이사이에 루드베키아꽃과 접시꽃, 난초 등 각종 꽃들이 두 서너 포기씩 자리 잡고 있다. 알뜰한 정원이다. 그 중에 백미는 사실 그 정원의 배경이다.

 

꽃들을 보다가 문득 눈을 들어보면 멀리 북항대교가 부산항을 가른다. 낮에는 시원한 눈 맛으로, 밤에는 화려찬란한 빛들의 향연으로 눈이 부신다.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오래된 아파트 작은 뜰에 지나지 않는 그 남자의 정원이 전문 정원사의 손길에 기댄 어느 부잣집의 정원 못지않은 가치를 자랑하는 순간이다. 그는 번다한 세상살이에서 자의든 타의든 벗어나 손바닥만 한 땅뙈기이나 제 뜻대로 심고 가꾸며 바라본다.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지만 맘속에 특급 태풍이 지나가는지, 불탄 잡목림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특히 작년 겨울부터 올 봄에 이르기까지 태극기를 앞세운 나이든 사람들의 요령부득의 주장들과 괴이한 행동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온 나에게 조용한 그의 뒷모습은 신선하다. 그 자체로 부산의 풍경중의 하나가 된다. 말없이, 그렇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들에 포위되어 있는가, 꽃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뒷모습에서 나도 잠깐 감정의 여유를 가진다. 말 걸기를 포기하고 꽃과 북항대교와 산복도로 마을을 바라보는 그를 나도 바라보기로 한다.

 

 

 

-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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