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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집_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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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560회 작성일 19-07-0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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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집

 

태국에 또 가니(タイにまたくの?”

다시, 돌아 갈 거에요また ?ります!”

 

처음 태국에 왔을 때만해도 그랬다. 애초의 계획은 겨우 반 년으로 잠시 머무는 것에 불과했다. 허나 예기치 않게 현지 대학원에 입학하고 부터는 일시적인 체류는 곧 기약없는 거주로 이어졌고, 늘어난 체재일 수만큼 본격적인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집으로 갔다. 살림에 필요한 짐들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돌아가는 길은 떠나왔을 때와는 정반대였다. 태국의 방에다 모든 짐을 던져두고 텅 빈 가방만 달랑든 채 한국으로 향했다. 그탓이었을까. 집에 도착했지만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곧 다시 가방을 꾸려 떠나야 한다는 것도 그랬지만, 각자의 살 길을 좇아 가족들마저 뿔뿔히 흩어지고 나니, 사실상 내게는 단촐한 세간들을 쌓아 둔 단칸방만 남아 있을 뿐, 집이라고 할 만한 곳도 딱히 없었다.

 

그런 모호함 때문이었을까. 하루는 일본 지인과의 통화중에서 였다. 마침 한국에 있다고 하자, 대뜸 태국에 또 갈 거냐고 물은 것이다. 그래서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거라며 무심결에 대답했다. 하지만 지인은 그말에 적잖이 놀라워하며, 돌아간다니! 이젠 그곳이 네 나라(homeland)가 되었느냐며 슬쩍 빈정거린 것이다. 오랜 벗들과 인연은 있다 한들 정작 집은 없는, 한국(homeland)은 어느덧 내게 그런 애매한 곳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태국을 마냥 집이라 부를 수도 없다. 물론 지금 여기, 한국도 아닌 바로 이곳 태국에서 내 삶의 일부는 새롭게 쓰여지고 있는 셈이지만, 사소한 순간들이 마디마다 걸리고, 한 마디 말에도 정성을 다해야만 하는 생활은 고되기만 할 뿐, 결코 집이라 느낄 새가 없다. 가끔은 태국인 다 됐네라며 현지 친구들로부터 우스개 농담을 들을만큼 나름 이곳의 생활에 익숙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그들과는 다른 맛과 향에 이끌리고, 한국의 소식에 먼저 귀를 종긋 세우는, 매순간 완벽하게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남아 있는 탓이다.

이처럼 두 나라를 오가며, 두 개의 언어로 말하고, 두 개의 이름으로 호명되고, 두 개의 문화와 질서 속을 거니는 동안, 나의 일상은 어디로든 갈 수는 있지만, 정작 어디도 집은 없는/아닌, 어딘지 기묘한 이야기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다시피) 오늘날 우리의 삶은 숱한 경계를 넘나들고, 수많은 시차와 고도들을 가로지르며 마주한 다양한 풍경들로 점철해 간다. 그러니 여기와 거기에서 살지만 비록 그 어디도 내 집은 아닐지라도, 이동과 그 사이의 공간을 장소로 개념화한 존 어리 식의 표현을 바꿔 말하자면, 집은 오히려 이곳과 그곳을 오가는 길목(interspace)에서, 계속해서 세간들을 꾸리고 풀기를 반복하는 그 길 위에서 펼쳐졌다, 사라지고는 한 게 아닐까. 이동과 정주를 거듭 되풀이하는 삶 속에서 어긋난 문법(내가 태어난 고향이 곧 내 집이요!)은 그렇게, 끝없이 방랑하는 이들의 걸음걸음마다 세워진 길 위의 집으로, 그 어긋난 문법의 낙인들을 도리어 하나 둘 지워가는 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