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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품_임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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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619회 작성일 19-06-2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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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품

 

거울 저편에 낯선 여자가 서 있다피곤해 보인다눈가와 입가에 패인 주름 탓에 더 초라해 보인다보브 커트이지만 앞머리가 볼륨감 없이 툭 떨어져 있다흰머리가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할머니 초입이 아닐까 할 정도로 나이들어 보인다.

 

제대로 거울에서 나를 비추어본 적이 없다초등학교3학년 때부터 해질녘에 거울보는 것을 좋아했다낮에는 가난한 여자아이가 보였지만 밤에는 턱선이 동그랗고 눈가가 촉촉한 여자가 거기 있었다곧 여물 것만 같이 피부가 탱탱하고 발그스레했다석양빛이 식당 안 큰 거울을 비추고 있었다엄마는 기사식당을 했고 아빠는 여자를 낚거나 공예 같은 취미생활을 했다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한 적이 없다나는 누구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 현실 감각을 잃어버렸다나르키소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한 것처럼 내 모습정확하게는 내가 보여지는 모습을 사랑하였다근거 없는 나르시즘으로 인해 대화를 장악하여 다른 이들의 발언을 막았다친구가 거의 없었다.

 

천일동안 내면일지를 썼다나르시즘은 생애 첫 폭력 장면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전쟁의 포화처럼 쏟아지는 아빠의 주먹질과 엄마의 비명에 아이는 상상의 세계로 도피했다그 세계에서만은 자신이 주인공이었다단 한 번도 주인공이 아니었다는 사실 탓에 나르시즘이라는 환상을 창조했다.

 

극과 극은 통하는 것처럼 나르시즘은 자기비하와 동일어였다엄청난 자기비하를 가슴 한 켠에 간직하고 있었다잘 나가다가도 삐끗하여 실패하게 되면 속으로그러면 그렇지라고 생각했다자기비하의 그림자를 평생 벗어나지 못 했다

 

내면일지를 쓰면서 또 한 가지 통찰하게 된 사실은환상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무관심 속에 자란 내면아이가 온전히 내게 집중해 줄단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구원자를 오래 기다렸다.

 

상대는 남성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여성이기도 했다고통받는 엄마 곁에서 생명을 유지해 온 아이는 고통받는 여성을 친구로 두었다그렇지만 냉담했다무심으로 인해 동성 친구들이 떠나갔다아직도 내게 집중해 줄 여성을 찾고 있다여성에게 성적으로 끌리기도 한다.

 

욕망이 두렵다매순간 살아있음이 굴욕이다이제 꺾어져서 쉰한 살이 되었다이제는 요람보다 무덤으로 가는 길이 더 가깝다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목격해야 하는 나이에 생을 탐하게 된다나에게서 사라져가는 생을 타인에게서 발견하고는 내것인양 취하고 싶다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여성을 보면 자꾸만 눈길이 간다이해한다고정말 이해한다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혼절할만큼 외로운 날엔 그 여성의 품에 뛰어들어가 눈물을 훔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