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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공모자(共謀者)_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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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6-01 10:51 조회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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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6.01

행복한 공모자(共謀者)

김나영

 

 

꺄르르르. 숨 넘어가는 웃음소리가 10여분 동안 들리고 있다. 뭐가 그리 신날까. 눈물까지 찔끔거리면서 말이다.

10분 전, 조카와 이모는 거실 벽에 크레파스로 온통 낙서를 하곤 도망쳐 깔깔거리고 있다.

십오 개월 된 조카는 이제 크레파스를 꾹 움켜질 수 있음에 경이를 느낀다. 그리고 손을 사용해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신을 대견해한다. 금지된 장난이 주는 두근거림과 더불어 그것을 대하는 할머니의 과한 화내기 동작은 덤이었음에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조카는 처음, 도화지에 나름의 그림(그냥 크레파스로 줄긋기 수준의)을 그리고 있었다.

벽에 눈길을 돌리며 소파 위로 갔을 때 이모가 모른 척 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눈치를 살피며 희미하게 한 줄을 그렸을 때 씨익 웃어 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걸 발포명령 삼아 조카는 온 힘을 눌러 담은 크레파스를 마음껏 휘갈겼고, 이모 역시 재미난 놀이에 기꺼이 동참한 것이다. 어찌나 은밀하고도 신나던지 도무지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베란다 볕에 널어 두었던 이불빨래를 들고 오던, 십오 개월 작가의 외할머니이자 서른아홉 낙서공모자의 엄마가 이런, 응찬아 이게 뭐냐.”라는 소리와 함께 이모의 등짝에 강타를 날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둘 다 까치발로 방에 쫓겨 와서는 지금까지 흥분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다. 웃고 있는 조카의 얼굴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글로 표현하기는 더 어렵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빛나는 그 얼굴이라니.

하지만 서른아홉 살 된 이모의 의도는 무엇인지 이 시점에서 사뭇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아이처럼 낙서에 마냥 즐거움을 느낄 것도 아니거니와 집 거실에 낙서를 하는 행위가 적절한 나이는 아니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깟 낙서에 예술행위라도 한 듯 웃음 뒤 얼굴에는 언뜻 진지함이 비친다. 뱅크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면, 아마 지금 얼굴과 같지 않았을까 한다.

책상 옆에는 프린터기로 출력한 뱅크시의 작품이 걸려 있다. ‘수십 장의 유니온 잭을 재봉틀로 박고 있는 어린 노동자, 화염병 대신 꽃을 투척하는 남자가 바로 그것이다.

이모는 지금, 세상의 희망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사랑받고 활개를 펴야 미래가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는 비장함 마저 서려 있다. 그리하여 뱅크시의 예술세계와는 전혀 상관도 없건만 위험(?)을 무릅쓰고 벽에 낙서했다는 공통점 하나에 저리도 기쁨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 걸음 디뎠으니 뱅크시와 함께 공모자(共謀者)가 되기로 한다. 우주 평화의 전달을 목적으로 아이들에게 사람과 사랑을 가르치는 일은 못하겠지만, 그저 신나게 놀아주는 일은 해야겠다고 이모는 생각한다.

스프레이 하나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얼굴 없는 거리의 화가 뱅크시와의 공모를 꿈꾸며.

 

 

 

어린이 전문서점 책과 아이들 북큐레이터, 그림책을 좋아하고 즐겨본다. 부산의 모습을 그림책으로 담는 작업을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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