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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기술> 2.의도가 담긴 문장_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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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6-06 09:21 조회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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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기술> 

2. 의도가 담긴 문장

현 수

 

 

 

하나. 이것은 한 달쯤 전 친구에게 내가 들려주었던 이야기이다.

작년에 민예총 의뢰로 글 연재를 했었는데, 올해 또 원고 청탁이 들어왔어. 이번에는 8부 기획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이번엔 어떤 주제로 써 볼까 고민을 했거든. 그러다가, 최근에 내 아는 애가 SNS에 글을 쓴 걸 봤어.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 어벤져스를 봤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질문을 하는 이유가 자기들은 독립영화나 예술 작품 같은 것만 본다는 걸 강조하면서 대중적인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려내려고 하는 거였다고. 그래서, 나는 내 취미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지. 너도 알겠지만, 내가 PC게임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고 대중영화도 보고 사진도 찍고 취미가 많잖아. 이런 게임이나 대중영화 등을 작품성이나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면서 잘난 체를 하려는 세태를 비판하는 글을 쓸까 싶어서. 그러면서 첫 화를 구상했는데, 대충 이런 거였어. 그림을 감상할 때에 화풍이나 붓질의 기술 같은 걸 보고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매드 맥스에서 화면을 역동적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된 카메라 기법 같은 거에 무지한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가 가진 주제 의식의 변천사 같은 걸 무시하는가 같은 거였지. 그런데 여기까지 구상하고 나니, 이건 결국 그렇게 콧대 높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잘났다고 드러내는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 그래서 이 주제는 안 쓰기로 했어.” 친구가 대답했다. “글을 쓰기 전부터 그런 것부터 생각하냐.”

 

. 이것은 바로 지난 달 내가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쓴 첫 문단이다.

[2018년에 두 가지 글쓰기 관련 특강을 진행했는데, 그 중 하나가 고백형 편지쓰기 프로그램이었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누구나 편하게 글쓰기를 할 수 있게끔 고안한 그 프로그램에 참석한 한 분이 말씀하시길, 자기는 글을 정말 쓰고 싶고 잘 쓰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글은 다소 두서가 없었기에 하루는 날을 정해서 아주 기초적이고 원론적인 글쓰기 이야기를 들려 드렸다.]

 

[하나][]의 공통점은 내가 이야기를 꺼내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하면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각 이야기나 글의 실제 주제는 이 서문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그러나 내가 갑자기 남을 비판하는 글을 쓰겠다고 하는 이야기가 친구에게는 뜬금없이 들릴 것이 분명하므로 [하나]의 도입을 민예총 원고 청탁으로 잡은 거다. 또 독자들의 입장으로서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글쓰기의 기술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글을 쓰는 게 납득이 안 갈까봐 []과 같은 도입을 넣었다.

 

이것들은 주제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기에 길게 쓰진 않았지만, 1화에서 언급했던 바와는 달리 주제와 무관한데도 빼지 않았다. 이것을 넣지 않으면 청자 혹은 독자가 내 주제가 아닌 다른 것들을 궁금해 하느라 이야기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 방해가 되는 내용은 뺀다. 반대로 이 경우는 이런 도입이 없이는 주제를 전달하기 이전에 엉뚱한 곳으로 관심이 쏠릴 것이므로 넣는다.

 

이런 것이 의도이다. 글을 쓰면서 어떤 문장이나 내용이 들어간다면, 거기에는 의도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의도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보자. 그렇다면 [하나]의 예시는 왜 저렇게 길게 적었나? 지금 이 글에서 이 정도의 이야기만 하려면 굳이 길게 적을 필요가 없는데. 그렇다면 여기에도 의도가 있는 것이다. , 우선은 나의 자기소개다. 당장 지난 번 글에서도 내 소개는 없었으니까. 이 소개는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중요한 맥락이 있다. 나는 글쓰기에 관해 설명할 수도 있는 사람이지만, 다방면으로 문화 활동을 하고 있고 대중오락적인 컨텐츠도 즐기며 그 안에서 기법적인 측면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성향을 지녔다는 점 말이다. 덧붙이자면 내가 어떤 사람들을 꼴도 보기 싫어하는가도 슬쩍 집어넣었다.

 

내 소개만 한다면 사실 이 앞문단의 [나는~집어넣었다] 부분처럼 서너 문장의 서술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하나]에서는 열댓 문장으로 풀어 썼다. 거기에 담긴 의도는? 사실, 독자 여러분은 어차피 어떤 설명을 읽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여전히 모를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 앞문단 같은 설명을 읽는다면 이해는커녕 납득도 안 가리라는 점이다. “저는 정직한 사람입니다따위의 말을 누가 믿는단 말인가. 그러나 사례가 서술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그 사례의 행동을 판단하고 분석해서 이 사람의 정직함의 수위를 판단할 것이다. 그것이 예시의 힘이며, 이를 위해서라면 서술이 좀 길어진다고 해도 간결함을 해친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을 교과서적으로는 직접 제시간접 제시라고 하는데, 그보다 나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리는 방법이라고 부르겠다.

 

정리하자면, [하나]를 저렇게 쓴 의도는 1. 청자(독자)가 배경을 이해하게 해서 주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하기 위해 2. 나라는 인물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이다. 주제와 직결되지 않아도 유지하고, 다소 길어지더라도 감수한다. 1화에서 어지간하면 뺀다는 말을 했었는데, 어지간하면의 예외의 경우가 바로 이 의도라 하겠다.

 

조금 다르게 설명해서, 1화에서 이야기했던 대화라는 측면으로 풀어가 보자. 대화의 분위기를 리드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적당히 허풍도 섞어 가고, 중요치 않은 묘사도 집어넣고, 의성어 의태어도 사용하면서 말한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에는 빨려든다. 그런 사람이 사용하는 수식어는 문장을 불필요하게 늘이는 것들이 아니라 전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독자들이 이야기에 집중하게끔 만든다. 이것들 역시 주제와 연관되지는 않지만 빼 내면 안 된다. 자기 할 말밖에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들어주지 않을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의 대화에 흥미를 잃고 벽에 걸린 TV에서 나오는 가수의 노래로 고개를 돌리지 않게 해 주려는 의도인 셈이다.

 

. 이쯤 되면 의도에 대한 설명은 어느 정도 된 듯하다. 사족이지만 덧붙이자면, 지금 이 글 곳곳에는 나의 이전 글을 읽게 만들려는 의도 또한 담겨 있음이 느껴질 것이다. 당신이 대체 그래서 이전에 뭘 썼기에?”라고 생각하면서 1화를 찾아서 읽었다면 성공이다. 내가 작년에 연재한 글까지 읽게 만들었다면 더 큰 성공이겠다(이것은 [하나]에 숨은 또 다른 의도이기도 하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제법 너스레를 떠는 사람이라는 게 전달되어도 좋다. 글에는 다양한 의도가 숨어 있다. 이렇게 숨은 의도들을 교과서에서는 이면적 주제라고 가르치는데, 그보다 나는 흔한 대화의 기술이라고 하겠다. 그렇다. 다음 번 주제는 이 귀하디 귀한 흔한 대화의 기술이다.

 

 

 

글쓴이 소개 글을 썼던 사람. 앞으로 글쓰기를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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