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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_황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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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111회 작성일 17-05-1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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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5.18 초단편소설

착각

황상운

 

 

공지 : 서면 553시 회비 3만원 늦으면 벌금 1만원.

 

스마트폰에 있는 메시지를 읽어 내리며, 나는 조금 불안해한다. 그것은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에서 몸을 부대끼며 하마터면 폰을 떨어뜨릴 뻔해서가 아니라, 늦으면 걷는다는 벌금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다지 내키지 않는 모임이었다. 간혹 올라오는 정모 후기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도대체 만나서 뭘 할 건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매일같이 게임만 같이하던 사람들이니 만나서 적당히 술이나 한잔 걸치다 곧장 피시방에 가서 늘 하는 게임을 하고 헤어질 게 뻔했다. 그런 건 지금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더구나 처음 대면하는 사람들끼리의 어색함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목소리로만 알고 지내던 사이끼리 복면가왕 같은 쇼라도 꾸며보겠다는 것인가? 최선을 다해 가장 멋지고 이쁜 모습만을 프로필이랍시고 내걸고는 일대의 기만축제라도 열겠다는 것인가? 혹시 장기라도 털리면 어쩌려고 그러는 걸까?

어딘가에 정차하는 지하철과 밀려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지켜보며 다시금 짜증이 치솟는다. 대체 이 망할 새끼들은 휴일에 집안에서 쉬지는 않고 왜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오고야 말겠다는 끔찍한 상상을 실현하는 거지? 그냥 좀 근처에 있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되잖아? 나는 짜증나는 이유를 대라면 10분 안에 백 가지도 더 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이유들은 곧 하나의 이유로 요약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나는 지금 이 상태가 가장 완벽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마흔 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인 모게임 오픈 카톡방?1)에 들어간 것은 한 달 전이었다. 이곳은 20-30대로만 인원을 제한하는 곳이었고, 1년 넘는 시간동안 유지되어 온 보기 드문 그룹이었다. 그 시간동안 이 그룹은 해체될 수 있었던 많은 위기들을 대체로 잘 극복해왔고 이제는 구성원 간에 끈끈한 정이 생겨있는 게 확연하게 보일 정도였다. 이런 점은 마치 자비로운 종신독재자?2)와 같은 방장의 역할이 컸다. 그룹 안에서 거의 최연장자에 유쾌하고 격의 없지만 엄격할 때는 제대로 화낼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은 무엇보다 자기가 만든 이 작은 세계를 무척 열정적으로 아끼고 있었다. 이미 그룹 안의 사람들은 자주 서로 만나고 하루에도 천 톡이 넘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에 서로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이였다. 그 안에는 나름대로 규칙과 질서가 있는 정말 작은 사회나 다름이 없었다. 그 점이 나에게도 무척 신기하고 대단했다. 언제 대체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수 있었냐고 묻는 나에게 방장 형은 웃으며 커뮤니티 만들기 좋은 세상이야. 너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거야.’ 라고 할 뿐이었다. 사실 내가 오늘 모임에 참가한 이유는 이 사람이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룹 안에서 그는 거의 파이트 클럽의 타일러 더든과도 같았으나 내심 나는 그가 실제로는 속이 좁고 꼰대에다가 카리스마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아주 커다란 실망감을 느끼고 싶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심술 맞은 생각을 하는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나는 10분정도 늦게 도착했지만 더 늦은 사람도 있어서 그렇게 구박을 듣지는 않았다. 막내가 늦었다며 김여사누나는 나무랐지만 다분히 장난기가 있었다. ‘유이형은 자신이 가장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했다며 자신이 시간이 남아돈다는 것을 자랑했고(그런 뜻은 아니겠지만 솔직히 다른 어떤 뜻이 있다는 말인가) 가장 멀리서 온 누구집아이유형은 무려, 오늘을 위해서 3시간을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그 말에 말없이 대체 이 모임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한번쯤 생각하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버섯벗엇이 오고 우리는 술집으로 갔다. 우리는 모두 서로가 목소리를 듣고 짐작한 생김새와 실제 모습차이에 대해 길게 얘기했다. 그건 정말로 짐작할 수 없는 것이어서 통통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마른사람이거나 그 반대이거나 세련될 줄 알았던 사람이 동네 형 같거나 귀여울 줄 알았던 사람은 의외로 수수하거나 했다. 그 때문에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실감이 났고 서로의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는 돌연 어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지루해져서 모두가 스마트폰을 볼 때 쯤 방장 형이 도착했다.

방장 형은 타일러 더든도, 시시한 꼰대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다. 첫 인상을 보고 내가 느낀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진가는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드러났다. 유쾌한 농담과 기발한 상상력,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하는 그 능력은 보통사람이 가질 수 없는 어떤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어느새 모두가 웃기 시작했고 손뼉까지 치며 즐거워했다. 온라인에서는 그렇게 친했던 사람들도 직접 만나서는 벽이라도 마주한 것 같았는데 이 사람은 그 벽을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며 점점 낮추더니 마침내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만들어버렸다. 흡사 그 솜씨는 인간 조련사와 같아서 우리는 어느새 먹이를 달라고 보채고 애정을 갈구하는 동물원의 동물들이 되어서 그 말과 손짓에 완전히 집중해버렸다. 정말이지 무섭고도 대단한 능력이었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만큼.

나는 완전히 감탄했고, 존경심마저 생겼다. 즐겁게 술자리를 마치고 나는 방장 형에게 참지 못하고 그 놀라운 대화의 비결에 대해 물어봤다. 형은 웃으며(이번에는 그 사람이 웃는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말했다.

그건 너희가 날 신처럼 생각하기 때문이지. 나는 커뮤니티를 만든 사람이니까 말이야. 모임 밖에서는 나는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아.”

제가 형을 신이라고 생각한다고요? 그럴 리가요.”

글쎄, 과연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를 신이라고 생각했을까?”

그야 모르죠. 전 기독교인이 아닌걸요.”

방장 형은 웃으며 말했다.

언젠가 네가 커뮤니티를 만들게 되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방장 형이 김여사누나와 연애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우린 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커뮤니티의 공식커플이 생겼고 사람들은 모두 축하해줬다. 커뮤니티는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가고를 반복했지만 비슷한 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알 수는 없었지만 방을 나가는 사람들은 욕을 하며 나갔고, 나는 그런 막돼먹은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세상에 미친놈이 어지간히 많아야지.

나는 그 후로 줄곧 방장 형과 친하게 지냈고, 우연하게 방장 형이 다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처음엔 이 회사가 그 회사인 줄 몰랐다. 야근을 하느라 정모에 늦은 방장 형이 다니던 회사라는 걸 알았다면 금요일에 야근을 시키는 몰상식한 회사 따위엔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포함한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여러 부서를 돌며 인사를 시키는 험상궂은 과장이 기술개발부에 이르렀을 때, 나는 방장 형을 발견하고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형은 아주 유능한 사원처럼 보였다. 빤히 바라보는 내 시선을 느끼고 방장 형은 나를 보더니 어쩐지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처럼 보였다. 험상궂은 과장은 개발부의 사람들을 직위가 높은 사람부터 소개시키더니 방장 형에 이르러서는 돌연 그의 머리를 세게 쥐어박으며 말했다.

임마는 너네 선배긴 한데 어휴……. 너네는 얘처럼 어리버리하게 굴기만 해라, 하여튼.”

방장 형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려갔다.

 

?1) 친구 추가없이 편하게 채팅하고 싶을 때 링크로 열리는 카카오톡 오픈채팅 

()카카오가 제공하는 글로벌 무료 모바일 메시지 서비스 카카오톡은 오픈 카톡방을 위와 같이 설명한다.

 

?2)자비로운 종신독재자(BDFL, Benevolent Dictator for Life)란 소수의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개발 리더에게 부여되는 칭호이다. 주로 커뮤니티 내에서 논쟁이 있을 때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려줄 수 있는, 프로젝트 창시자인 경우가 많다. 

 

 

 

1990년 부산 출생, 소설 쓰는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