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의 무늬_김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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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011회 작성일 18-10-25 13:17본문
글빨 18.10.25 에세이
문맹의 무늬
김석화
엄마는 글을 모른다. 나는 그걸 몇 년 전에야 알았다. 몇십 년 동안 내가 몰랐다는 것이 가능한 일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몇 년전 넌지시 글을 모른다고 말했을 때 나는 놀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엄마에게도 아무 내색 하지 않았고, 그건 별일 아니라고 순간 생각했다. 어린 시절 가난으로 배곯이를 수시로 했다고 들어왔고 그 가난이 문맹과 이어졌을 뿐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알고도 짐짓 모른척 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오래 전부터 주문진에 살고 있다. 내가 자라고 외지로 떠나는 사이, 한 뼘의 이동도 없이 그곳에 있다. 딸집에 한 번 찾아오지 않고, 시장 이웃들과 놀러가는 일도 거의 없이 지냈다. 무심한 성격이라 그것에 큰 서운함은 없었다. 다만 엄마의 문맹을 알고 나서는 그것이 슬펐다. 수많은 이정표가 엄마에게는 그저 추상이었다는 것. 가난해서 자동차 같은 건 없었으므로 버스를 타는 일조차 쉽지 않았을거라는 것. 문맹이 몸과 마음의 이동을 제한했다는 게 서늘하게 다가왔다. 엄마는 수산 시장을 벗어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시장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횟집. 그 곳에 수족관처럼 붙박여, 파도 같은 삶을 밀어내고 쓸어내며 살았다.
생선 대가리를 따고 회를 뜨고 매운탕을 끓이며 보내는 하루.
똑같은 하루가 왔다가 다시 물에 쓸려 내려가는 또 다른 하루.
그 시간의 퇴적 속에 엄마는 침전되어 살고, 단단한 암석이 되어 갔다. 자신만의 알갱이로 뭉쳐지고 다져진. 바람구멍 하나 없는 빼곡한 질감을 지닌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런 엄마에게 글자는 무엇이었을까.
회칼이 닳고 닳아 날이 사라져 가는 시간.
그 칼을 바꾸며 얼마 남지 않은 날을 가진 칼들이 늘어가는 시간.
그 시간의 마모 속에 엄마는 스스로를 벼려 단단한 철이 되어 갔다. 그 날은 닳지 않았다. 대신 무릎이 닳고 칼을 만진 손가락이 휘었다. 그리고 매일의 웃음이 닳아갔다. 짠내와 비린내가 스민 삶 속에서 엄마에게 필요한 언어는 어떤 것이었을까. 손님용 몇 마디 말과 싸움판이 벌어지는 날의 악다구니. 몇 개의 숫자. 그것 말고 다른 언어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사소한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에겐 절실했던 것들.
엄마가 기계를 전혀 만지지 않은 것. 은행에 가지 않았고 메모 하는 걸 본 적이 없다는 것. 내가 읽는 책에 대해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것. 엄마의 문맹을 알기 전에 이런 것은 그저 당연한 일상이었다. 삶 속에 스며있어 아무런 티도 안나는 우리 가족의 무늬였다. 그래서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내가 좀 더 세심했다면 알 수 있었을까.
엄마가 납작한 언어로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걸 벗어나려 애썼다. 책을 놓지 않는 내게 늘 하는 말. 그걸 어디다 써먹느냐고. 푸념인 듯 질문인 듯 닦달인 듯 했다. 엄마가 생선을 잡아 회를 뜨듯 나는 책의 글자들을 저몄다. 책이 가진 저마다의 비늘을, 일하듯 벗겨냈다. 엄마는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써먹을 데 없는 공부만 하는 딸이. 시장 누구네 딸은 어디서 일한다더라, 돈도 잘 번다더라. 엄마의 언어와 나의 언어는 너무 달랐고, 그 다름이 싫어 도망만 다녔다. 다른 언어를 가지고 엄마에게만 애쓰지 않았다. 엄마의 문맹을 안 뒤로는 그것이 달라졌다. 엄마의 말을 열심히 듣는 것. 엄마의 언어로. 예전 같으면 싸웠을 텐데 이젠 그러지 않는 것.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 휴대폰을 가지게 된 엄마는 전화로 같은 말을 여러 번 한다. 다음 전화에도 또 같은 말을 한다. 나는 처음 들은 것처럼 가만히 듣는다. 그리고 문자 대신 가끔 사진을 전송한다. 엄마가 가진 무늬와 결에 이제야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