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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영, 부리가 삶의 핵심이다_손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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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220회 작성일 18-10-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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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8.10.19 칼럼

알영, 부리가 삶의 핵심이다

손재서

 

 

너의 발이 갔던 길을 돌아오게 하라

너의 다리가 갔던 길을 돌아오게 하라

너의 발과 다리가

우리 마을에 서게 하라.“

 

아프리카 부족들은 아주 최근까지도 북을 쳐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위에서 인용한 글은 집으로 돌아오라는 정보를 전달할 때, 이들이 북소리를 통해 발신하는 일종의 상용구이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귀가라는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이 경제적이면서도 오류를 줄일 수 있을 텐데, 집으로 돌아오라는 간단한 말을 저렇게 복잡하고 길게 풀어놓으면 어떻게 의사전달을 할까하는 의문이 든다.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이라는 편리한 도구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한다. 이 도구는 길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이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할 때 현대인들은 줄이 바뀔 때마다 메시지를 따로 전송하는 습관을 들인 듯이 보인다.

우리 내일까톡! / “6까톡! / “동래지하철 2번 출구까톡! / “에서까톡! / “만나자까톡!

옛날에 전신국에서 보내던 전보처럼 글자 수에 따라 요금을 메기는 것도 아닐텐데 현대인들은 글자의 낭비를 무지하게 싫어하는 것 같다.

 

아프리카인들의 북신호는 수식이나 비유를 아주 길게 첨가하여 정보를 전달한다. 이들의 북신호는 언어의 여러 구성요소 중에서 오직 성조만을 선택해 신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북소리는 높낮이 차이가 있는 두 음정의 북소리( - 그리고 _ )로 이루어져 있다. 모스 부호가 긴 신호와 짧은 신호를 교차해 알파벳을 표현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북신호에는 의미를 연결하는 매개체인 알파벳(자음과 모음)이 없다는 점이다. 북신호는 단어를 통째로 성조만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한다. 예를 들면 두 번의 높은 음(--)으로 아버지를 뜻하는 상고(sango)라는 정보를 전달하는 식이다. 문제는 두 번의 높은 음 성조로 이루어진 단어가 이 부족의 사전에서만도 130개 이상이 된다는 것이다. 달을 뜻하는 송게(songe)(--), 닭을 뜻하는 코코(koko)(--), 식용물고기의 한 종인 펠레(fele)(--) ...... 그래서 이들은 북신호에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보다 평균 8배 정도 긴 잉여정보를 첨가하여 정보를 전달한다. 잉여정보들의 교차해석을 통해 전달받고자 하는 의미를 유추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마치 스도쿠 퍼즐을 풀 듯이.

 

관공서나 병원에 가면 자기 이름을 말해야 할 때가 있다.

성함이?”

손재서

?”

손바닥 할 때 손, 아이(+) , 서쪽 할 때 서

살아오면서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이렇게 정확한 음운을 말하는 루틴을 정해버렸다. ‘손재서라는 이름정보를 전달하는데 따라붙는 이런 잉여정보들은 본래 전달하고자 했던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아프리카인들의 북신호도 북꾼들은 각 단어마다 예외 없이 수식구를 붙이거나 비유를 사용하여 전달한다. 가령 이라는 단어는 땅을 내려다보는 것이라고 표현하거나, ‘무서워하지 말라는 경고는 입까지 올라온 심장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태초에 시인이 있었다면 이 사람은 아프리카의 북꾼이 아니었을까?

 

잉여정보는 북신호의 모호함을 줄이고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정확성을 살린다. 우리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잉여정보는 혼란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잉여성은 정보 해석의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의 북소리 신호뿐만 아니라 모든 언어에는 잉여성이 존재한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는 일기장에 엄마가 사과를 갂아주었습니다. 사과가 마싯엇습니다라고 써놓았지만, 우리가 이것을 보고 아이가 쓰려했던 정보를 유추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말이 가지는 잉여성 덕분이다.

 

80~90년대 거리에서는 문화패라고 불리는 딴따라 가수 풍물패들이 새 세상의 신명을 맨 앞줄에서 북과 장구와 노래로 가장 먼저 맞아들였다. 그러다 백골단이 달려올 때면 북과 장구를 둘러맨 채 맨 앞줄에서 가장 앞장서서 신나게 얻어맞았다. 그 때 마이크를 잡고 민주주의의 열망을 외치던 분들이 이제 현실정치에서 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예술가들 지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왜 국민의 혈세를 그들에게 낭비해야 하느냐?”

맞다. 나는 노는 것이 좋아 딴따라가 되었다. 하지만 당신들이 예술가가 노는 것에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한다면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나라엔 노래가 없을 것이다.

 

경제적 무용은 예술의 본질이다. 예술은 잉여로부터 시작한다.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은 알에서 태어날 때 부리를 달고 태어났다. 신라 사람들이 알영을 데려다 씻겼더니 부리가 떨어져 나갔다. 어쩌나? 떨어져 나간 부리가 삶의 핵심이다.

 

ps)휴대전화가 보급된 지 10년 만에 아프리카에서는 북꾼들이 사라졌다. 물론 북신호로 소통하는 언어도 잊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