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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또는 반성의 형식_박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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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5-17 19:21 조회2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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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5.18 서평

기억, 또는 반성의 형식

아빠의 서재1)를 읽고

박정웅

 

 

나에게도 독후감의 기억이 있다. 흐릿하기는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면 꼭 독후감 숙제가 주어졌다. 내게는 일기와 더불어 가장 부담이 컸던 독후감 쓰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책 읽기를 꺼리는 흔한 꼬맹이 중 하나였다. 겨울방학 기간이 끝나고 학교에 가면, 곧 학년과 담임 선생님이 바뀌는 까닭에선지 제대로 된 숙제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 독후감 쓰기 같은 건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반면 여름방학에는 사정이 달랐다. 방학 숙제 프린트물엔 권장도서목록과 그 중 두어 권쯤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는 설명이 엄포처럼 적혀 있었다. 하필 권장도서목록의 책들은 왜 늘 우리집 책꽂이엔 없는 것들뿐이었는지. 나는 방학 숙제 때문에 책을 사야 한다는 말을 엄마에게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 궁리하곤 했다. 내가 보기에, 우리집은 한 번 읽고 말 책을 구매할 만큼 여유로워 보이지 않았으니까. 간혹 가다가는 읽지도 않은 책을 읽은 척, 거짓 독후감을 썼던 기억도 난다. 그러고 나선 개학 후 한 일주일쯤은 선생님한테 들키지 않았을까, 마음 졸였던 기억도 난다.

 

신순옥최서해최인해 가족의 아빠의 서재는 자연스럽게 나를 초등학교 시절로 데리고 갔다. 그리곤 그 시절의 시점에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끔 했다. 책과 친하지 않았고, 독후감이라면 소스라치기까지 하던 소년이 이제는 문예창작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재학 중이고, 심지어는 서평을 쓰고 있다니.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왔는지 쉽사리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두 시절 사이의 간극은 아득해 보인다. 다만 삶이라는 것이 때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을 낳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느낀다. 예컨대 아빠의 서재라는 책이 어디까지나 서해와 인해 아빠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같은 것. 그러니까 출판평론가 최성일 씨가 지난 2011년 뇌종양 재발로 숨을 거두지 않았다면, 오늘 내가 이 책으로부터 받은 감동은 불가능했으리라는 것. 이처럼 인과관계를 따졌을 때, 이미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좋지 싶은 경우, 나는 나의 감동이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그리고 감사하다.

 

아빠의 서재는 지난 2013, 최성일 씨의 아내 신순옥 씨가 쓴 남편의 서가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남편의 서가최성일 씨의 책을 읽어본 적 없으나, 아빠의 서재로 하여금 하나둘 찾아 읽고 싶어졌다. 아빠의 서재가 그만큼 괜찮은 책이기 때문이다. 책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이야기하자면, 유년 시절에 맡은 가벼우면서도 진한 풀내음이라고나 할까. 엄마의 독후감은 딱 필요한 만큼만 설명을 덧붙이며 기둥이 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딸 서해와 아들 인해의 독후감은 각각의 책과 이슈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직관적으로 풀어놓는데, 이 지점에서 보이는 아이들의 시선은 지극히 순수해서 아름다울 때도 있고, 생각보다 깊어서 대견스러울 때도 있다.

 

모든 에피소드가 좋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아무래도 1장 가족입니다3번째 에피소드, 아빠의 빈자리이다. 아빠 보내기라는 책의 독후감으로 채워진 이 부분에서는 아이들이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솔직담백하게 드러난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아들 인해는 자신이 좋아하는 레고와 <스타워즈>에 엄마도 취미를 붙였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는데, 3번째 에피소드에서 레고와 <스타워즈>는 사실 아빠에게서 물려 받은 취미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 과정이 워낙 담담해서 독자로선 그랬구나, 하고 애잔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딸 서해 같은 경우는 초등학교 시절, 학부형끼리 모여 축구나 야구 따위의 친선 경기를 하는 걸 볼 때면, 아빠가 그런 경기에 절대로 참석하지 않을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질투를 했다. 그리고 요즘도 아빠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어린애들을 볼 때면 가슴에서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딴 곳으로 돌려버리는데, 어렸을 때의 자신과 아빠 같아서 살짝 말을 걸어보고 싶기도 하단다. 이 같은 진정성은 결코 꾸며서는 나올 수 없는 아름다움의 맨얼굴이다.

 

나는 이처럼 순수하고 솔직한 아이들의 글을 쭉 읽고서, 따지고 보면 독후감이 아닌 글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서해와 인해는 모든 책에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았고, 그때마다 기억하거나 반성했다.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기억, 또는 반성도 일종의 읽기 행위였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아빠의 죽음을 읽었고, 전태일을 읽었고, 강아지똥을 읽었으며, 그들 자신을 읽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내가 잊고 지냈던 글쓰기의 기본적인 태도, 그것은 순수하고도 솔직한 기억과 반성이라는 것. 쓸 줄 아는 사람이기 이전에, 읽을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것.

 

​1) 신순옥최서해최인해, 아빠의 서재, 북바이북, 2015.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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