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빨

  • 자료실
  • 글빨

동래 : 2013-2014 1_현 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130회 작성일 18-09-18 12:56

본문

글빨 18.09.20 에세이

동래 : 2013-2014

현 수

 

 

내가 살았던 곳은 사실은 사직3동이었다. 그러나 부산에서 지역을 이야기할 때 사직동을 언급하면 사직구장을 떠올리게 마련이고, 내가 살던 곳은 그보다는 부산 사람들이 동래라고 생각할 법한 곳에 있었다. 저 사직동과 사직구장도 기실 같은 동래구인데, 사직구장과 동래가 서로 다른 동인 듯이 느껴지는 건 단지 지하철역 때문만은 아닐 테다.

동래는 동명이 아니다. 그러나 동래 지하철역을 기점으로 동래 메가마트를 둘러싼 일대를 마치 동마냥 동래라고 불렀다. 마치 남포동이라고 생각했던 일대 지역이 사실은 부평동, 신창동, 광복동, 동광동 등 여러 동네들이 밀집된 구역인 것처럼 말이다. 오랜 세월 부산의 중심지로 동래군으로 불렸던 그 역사를 나도 모르게 체화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동래를 동이라고 인식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꽤 오랫동안 저 메가마트 일대를 동래라고 불렀고, 부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그렇게 말해도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방금 언급한 메가마트 일대는 동으로 따지면 동래구 명륜동이다. 나는 가끔씩 이곳에서 술을 마시곤 했는데, 젊은이들이 넘쳐나 늘 시끄러웠다. 처음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명륜동 유흥가는 부산에서 서면이나 남포동 못지않게 젊은층이 유동인구의 태반을 차지했다. 온천장과 연산교차로라는 두 개의 거대한 성인 유흥가 사이에 떡하니 자리 잡은 이 일대는 위성으로 인구밀도를 파악한다면 이곳만 새빨개질 정도로 밤만 되면 길이 북적거렸다.

내가 아는 음악가인 벗이 한때 그 너머 복천동에 살았다. 복천동은 명륜동에서 동래구청 방면으로 동쪽으로 넘어가면 바로 나왔고, 지도의 동 경계선을 넘어가자마자 동네 분위기가 현격히 달라져 한산하다 못해 삭막하기까지 했다. 복천고분군 탓에 제대로 개발도 되지 않은 복천동은 명륜동과 같은 구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낡은 동네였다. 그곳에 있던 벗은 메가마트 일대를 가리켜서 소돔과 고모라라고 칭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2시만 되면 거리 곳곳에서 술에 쩔어 토하는 젊은이들이 보였으니까.

명륜동에서 복천동 방향과 반대 방향인 서쪽으로 붙어 있는 동네가 온천동이다. 내가 살았던 사직3동의 북쪽이자 미남교차로를 낀 온천3동은, 동래역 방면으로는 주택가가 이어졌고 미남교차로 방면으로는 옛날보다는 규모가 줄었다는 성인유흥가가 구성된 기가 막힌 지역이었다. 집으로 가는 빠른 길로 가겠다고 이 일대의 골목으로 들어섰던 어느 날 밤, 모르는 사이 그곳에 있던 성매매 집결지를 지나치게 되었다. 아뿔싸 싶었으나 이미 들어선 길인지라 헤드폰으로 귀를 막으면서 모른 체 지나가려던 나는 투명한 유리장 안쪽, 붉은색 조명이 흐드러지는 그곳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의 손짓을 애써 못 본 체하며 지나쳤다. 그때만 떠올리면 내가 어때야 하는 게 맞았을까 하는 고민이 가시지 않았다.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치는 내 행동은 과연 옳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옳은 행동이었을까.

그런 곳을 지나 남쪽으로 가면 바야흐로 내가 사는 사직3동이 나왔다. 사직3동은 복천동과 명륜동의 중간값 같은 동네였다. 나는 보통 이런 분위기를 보면 살기 좋은 동네라 생각하곤 한다. 골목은 너무 한산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산만하지도 않았다. 차 두 대가 여유롭게 서로 스쳐지나갈 만한 넉넉한 안길 양옆으로는 주택과 상가들이 적당히 뒤섞여 나타났다. 길을 다니는 사람들도 동네 사람들의 전형으로 교과서에 실릴 법한 모습들이었고, 사람이든 가게이든 대체로 활기를 띄고 있었다.

 

내가 살던 집은 주택 2층이었다. 용호동에서 그렇게 망하고 나온 내게 돈이 넉넉하게 있을 리가 없었고, 나는 돈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의 적당한 집에 들어가 살았다. 처음 대학을 졸업하고 살았던 게 대연고개 산자락에 묻힌 반의반지하였는데, 그때와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집주인들은 집이 낡았다고 했지만, 방 두 칸에 부엌도 있고 넉넉한 베란다 마당에는 평상도 놓여 있었다. 그때 내 집에 놀러 온 이들은 모두들 평상을 너무도 좋아했다. 아는 동생은 행님, 이 집 월세 중에 5만 원은 평상값입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내 심정도 다르지 않았다.

집안의 큰 방 벽에는 곰팡이가 폈다. 처음엔 그 작은 곰팡이가 보기 싫어서 두꺼운 투명 테이프로 곰팡이가 난 부분을 덮어 두었다. 그랬는데 그 곰팡이가 테이프 아래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해서 테이프 가장자리께까지 번졌다. 기겁을 하며 테이프를 덧대었더니, 덧댄 테이프 가장자리로 다시 번지는 것이었다. 마치 숨구멍을 찾으려는 듯한 저 곰팡이를 보며 나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억지로 죽인다고 죽여질 게 아닌 것 같아서. 묘사하기 좀 그렇지만, 색도 살짝 알록달록한 저 곰팡이와 나는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동래 : 2013-2014 2"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