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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이 백골에게_김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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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067회 작성일 18-08-0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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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8.08.02 짧은 소설

백골이 백골에게

김석화

 

 

얼마 전 당신에 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십대 남성의 백골이 몇 달이 지난 후에야 원룸에서 발견되었다는 기사였지요. 그것은 저에게 또 하나의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어떤 사연이자 이야기겠지요.

백골의 주인은 주로 나이든 사람들이었습니다. 홀로 살아왔거나 가족과 분리되거나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혹은 그 언저리의 사람들이었지요. 하지만 당신은 달랐습니다. 아주 젊은 나이였어요. 단단한 어깨를 가지고서 세상을 무섭게 쏘아볼 줄 아는, 두 걸음으로 당신만의 지도를 만들어갈 나이. 친구들과의 친밀감으로 하루가 모자라고, 방 한 칸의 유폐보다 방 밖의 세상을 환호할 나이. 그런데 당신은 나처럼 백골이 되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저는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습니다.

단 몇 줄의 기사로는 알 수 없는 이야기. 젊은 남자가 홀로 죽었다는 사실과 백골이 되어 발견되었다는 사건. 그 사실과 사건이 품은 진실. 그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쏟아지는 기사들 속에서 한 사람의 죽음은 클릭 한 번으로 스치고 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매일같이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혼잡한 세상이니까요. 알 수 없는 죽음들이, 애도마저 금지되는 죽음들이 도처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당신의 죽음이 유독 안타까웠고 마음 아팠습니다. 죽음으로 세상과 단절하려 했고 그 단절은 죽은 후에도 지속되었으니까요. 죽으면 육체가 그 장소 바깥으로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못했으니까요. 뼈가 되어서도 지독한 고독을 떠안고 가루가 되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너무 어렸습니다.

 

저 또한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어요. 살아있던 시간을 삶이라고 부른다면, 죽어서 남길 것은 뼈밖에 없는 삶이었어요. 뼈라도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가 어느 날은 뼈조차 이 세상에 부담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정말 뼈가 되어버린 저를 보았습니다. 내가 저렇게 반듯했었나 싶을 정도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어요. 뼈밖에 남지 않은 죽음, 그리고 발견되지 않는 뼈.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 방에서 살이 삭는 동안 시간도 삭아가고 있었어요. 흐르지 않는 시간. 고여 있는 시간. 그러다 삭아서 사라진 시간. 그런데 그것은 어딘가 낯익었어요. 살아있을 때 나와는 무관하게 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또 세상과 무관하게 잘 돌아가지 않는 나를 보며 느꼈던 것. 가진 것이 없어 세상의 막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시간의 고아처럼 느껴졌던. 그 때 느꼈던 것이 죽은 후에도 그 방에 머무르고 있었어요. 어째서일까요.

 

죽음의 소식은 매일 들려옵니다.

하지만 그들을 매번 마중 나가지는 않습니다. 저처럼 당신처럼 홀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을 마중 나갑니다. 고독사로 분류되는 죽음들이지요. 살아서 이미 백골이었던 사람들이었어요. 소외와 상실의 더께가 온 생을 덮었던 그런 사람들. 그들이 홀연히 제게로 오면,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들은 숨이 찰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면 각기 다른 삶의 빗살무늬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기쁨과 슬픔이 같은 무늬를 띠고 있습니다. 그러다 말문이 닫히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설명되지 않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들은 다시 한 번 죽음을 경험합니다. 말문이 막히고 기가 막히는 순간. 그러한 때가 살면서 얼마나 많았을까요. 살아서 느낀 것을 그들은 죽어서도 경험하는 것이지요.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막히고 막혀 더는 막힐 곳도 없던 삶. ‘를 등에 업은 존재가 아닌 존재자체가 어쩌면 였던 사람. 우리는 그러했습니다. 다만, 어쩌다 제가 그들을 마중 나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살아서 아무런 역할도 없던 제가 죽어서 무언가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제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건가요. 월세가 밀리고 집주인의 전화가 울리는 동안 당신은 알바를 뛰느라 아니면 알바를 구하느라 바빴겠지요. 낮과 밤을 몽땅 바쳐도 생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았겠지요. 그 무게를 세상은, 친구들은 알았을까요. 알았다면 나눠지려 했을까요. 그것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 채, 당신은 상심하고 말았을 겁니다. 사회는 이미 그 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최저임금 논란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요. 삶의 온갖 문제들은 개인과 가족에게 책임을 떠맡기지요. 그 책임들을 수행하느라 사람들은 죽어갑니다. 고독사가 늘고 때론 가족이 함께 죽어가도 사회는 대답이 없습니다. 세상 밑변들의 이야기를 이제는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시간의 고아가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제 뼈가 들려줄 이야기에 세상이 응답하는 날을 기다립니다.